배고픔도 하나의 감정이라고들 합니다. 혐오감도요. | 6개 기본 감정 | 생리적 감정
최근에는 배고픔도 감정 중 하나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감정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배고픔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예전에는 6개의 기본 감정이 있다고들 이야기했습니다.
이를 생리적 감정이라고도 합니다.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들 하고요. 놀라움, 두려움, 혐오감, 분노, 슬픔, 행복이 그 여섯 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다시피 우리에게는 이것 말고도 많은 감정들이 있습니다. 시기, 질투, 죄책감, 수치심, 자부심, 사랑, 경외심, 즐거움, 감사, 영감, 소망, 승리감, 연민, 애착, 열정, 관심, 만족, 기쁨, 안도감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감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배고픔, 목마름, 성적 흥분 등도 모두 충동이 아니라 감정 중 하나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학자들이 진화적으로 감정이 개발된 이유 중 하나로 꼽는 것이 바로 감정이 우리의 생각을 채색해 준다는 것입니다.
감정은 우리가 보는 세상을 그 감정의 색깔로 물들입니다. 슬플 때는 세상이 온통 비관적으로 보이고, 사랑에 빠져 설렐 때는 미래가 장밋빛으로 보입니다. 짜증스러운 일이 있었을 때는 세상이 온통 나를 괴롭히려는 사람과 사건으로 가득 찬 적대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상을 볼 때 일종의 색안경을 끼게 하는 것은 우리의 세상에 대한 평가를 변화시킨다는 뜻입니다. 감정은 우리가 사람, 사건, 사물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그 중요성의 수치를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같은 사람, 사건, 사물이라고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이 촉발되면 그에 대한 가중치가 달라집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누군가의 사소한 실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쁠 때는 옆 사람의 가벼운 실수에도 크게 화가 납니다. 그것이 같은 실수라고 하더라도 감정에 따라 그 중요도가 달라지고, 그 사건에 큰 의미와 가중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겠지요.
배고픔이 감정의 하나라고 한다면 우리의 가치 평가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배고플 때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가거나 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점에 가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식료품을 사고,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메뉴를 주문하게 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하겠지요. 배고픔은 결국 식량이라는 것에 가장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식량을 찾아 나서도록 우리를 추동하는 감정일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배고픈 상태로 백화점이나 쇼핑몰 같이 여러 가지 물건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사거나, 그다지 필요 없는 물건을 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고픔이라는 감정이 단순히 우리의 허기를 메우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채우도록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거나, 그것을 부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클리셰 중 하나가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슬픈 감정이라는 것을 감정의 선택지에서 배제해야 한다, 혹은 배제할 수 있다는 일종의 선언문 같은 것인데,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당연히 들 수밖에 없습니다. 슬플 때 슬프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 것이며,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생기니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포스팅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서 다른 포스팅에 써볼까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우리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배고픔이 감정의 일종이라면 이 명제는 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배고픔을 조절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배고픔이라는 감정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행동에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같은 견지에서 혐오감은 물건을 보유하려는 욕망을 억누르는 역할을 합니다. 배고픔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밀어내는 것이지요. 세상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찬 사람들이 속세에서 얻은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등지는 것이 어쩌면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욕을 줄이려고 일부러 혐오를 느낄 필요도, 그럴 수도 없겠지요. 어차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감정을 마음대로 가질 순 없을 테니 말입니다.
오늘도 전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으로 인해 행동이 편향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아보고자, 조금 템포를 늦추려 노력합니다. 그것이 아마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싶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