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단순한 자산이라기보다는 자아의 확장물일지도 모릅니다. | 장소 세포 Place Cell
집이라는 재화는 우리의 삶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이 더 좋다, 아니다 우리 집이 더 좋다 하며 싸우기도 하지요. 어찌 보면 집은 자아의 확장물이라고 볼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사람, 시간, 장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 사람이겠죠. 그런데 사람, 시간, 장소 중 기억에 가장 깊이, 가장 오래 각인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의심의 여지없이 장소입니다. 몇 년 전 지인들과 함께 어떤 여행지로 놀러 간 적이 있다고 해보죠. 그게 정확히 몇 년 며칠이었는지, 무슨 요일이었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누구랑 같이 갔었는지는 그보다는 기억에 남지만 그것도 좀 헷갈립니다. 어디로 갔었는지는 앞의 두 가지보다는 훨씬 더 명확하게 기억이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의 뇌는 사람, 시간, 장소 중 장소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합니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장소에 갔을 때는 잘 익은 과일이 있다, 어떤 장소에 가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토끼를 잡을 수 있지만 그 토끼를 노리는 늑대도 있다는 정보는 누구와 그 열매를 땄었는지, 언제 토끼를 잡았었는지 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우리의 뇌에, 그중에도 해마에는 장소 세포 place cell 이라는 세포가 있습니다. 이 장소 세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특정한 장소에 가면 반짝이며 켜집니다. 그래서 이 장소에 내가 온 적이 있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기억을 저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에 장소를 기억하는 세포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장소를 보다 더 잘 기억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지도 모릅니다.
집은 장소입니다.
집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누구와 함께 있느냐이기 때문에 집이라는 물리적 실체보다 가정이라는 추상적 실체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이 가지는 물리적 속성은 가정이라는 추상적 대상만큼이나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집은 안전과 익숙함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안정과 익숙함 없이 가정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안정”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은 아마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집은 부동산이니 쉽사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속성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안정감을 느끼는 데 매우 큰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기숙사를 집으로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그곳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집은 다릅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그곳에 계속 있을 것이고, 언제든 내가 찾아가서 열쇠를 꽂고 돌리면, 혹은 지문을 인식하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럼 해마의 장소세포가 켜지며 ‘아 집이다’라는 안도감을 주고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비교적 불변하는 집이라는 실체와 함께 나라는 인간의 지속성도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집에 대해 "집은 그냥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집은 단순히 무감각한 벽 따위로 이루어진 소유물이나 구조물이 아니다. 내가 누구였고, 지금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반영하는 내 육체와 자아정체성의 확장이다”라고까지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카렌 롤라라는 교수인데 실제로 화재로 집을 잃은 상실감을 논문으로 썼다고 하고, 위의 문장은 그 논문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서 살면 향수에 빠집니다. 그것은 우리가 고향이라는 물리적 실체, 그리고 거기 연결되어 있는 정신적 가치와 분리되는 것으로 인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관점에서도 집도 그럴 수 있습니다. 집은 자산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집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큰돈을 들이는 재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번 사면 쉽게 팔아버리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어디에 집을 살지 그 장소를 결정할 때 우리는 그 집에 놓여진 장소의 인프라, 분위기 사람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집과 그 장소가 나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얼마나 표상할 수 있는지까지 따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어디에 집을 살지 결정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거기 연결시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누가 내 집을 두고 뭐라고 하면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집을 사기 위해 긴 시간을 고민했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곳이라는 결론 끝에 이 집을 샀을 테니까요.
내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좋은 것이겠지요. 그러나 내 것이 좋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방법이 다른 사람의 것을 깎아내려서일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고 문헌 : 행복할 때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딘 버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