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에 대한 분노 |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편을 가르는 인간의 본능 | 최악의 형벌이었던 추방
우리는 내집단은 편애하고, 외집단은 배척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화가 날 때가 내집단 구성원 중 한 명이 다른 내집단 구성원에게 위해를 가할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추방형을 내리게 되지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을 가릅니다.
이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습성이어서 이것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인지적인 자원을 엄청나게 동원해야 합니다. 나와 생각과 신념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꼼꼼히 정보를 수합하고, 자기 객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자기 생각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 자체가 사실 매우 피로합니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들,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조차 부족한 우리들에게 나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까지 이해하고 보듬으라는 것은 너무 과한 요구임에 분명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면 좋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우리는 더욱더 내외집단을 나누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우 사소한 것으로도 내외집단을 나눕니다. IOS와 안드로이드 진영이 서로 다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사실 어떤 OS를 채택한 스마트폰을 사용하느냐가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문제일 수도 있으니 사소한 문제로만 치부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OS의 성능이나 중요도와 무관하게 우리가 편을 가른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iOS 사용자와 안드로이드 사용자의 집단의 이질성이 얼마나 높겠습니까, 각 개인의 다양성은 거의 지구에 존재하는 개인의 다양성만큼이나 높을 텐데 그런 이질적 집단 구성원들이 단순히 같은 운영체계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지요.
내외집단 관련하여 우리가 가장 분노하는 것은 당연히 외집단 구성원이 내집단 구성원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만큼이나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이 내집단 구성원이 내집단 구성원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유해한 것이 아니라 배신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 분노가 더 증가하게 됩니다. 내외집단을 가르는 것은 내집단에는 충성하고, 외집단에게는 강력한 적의를 가지게 함으로써 내집단에 대한 충성도를 극대화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편 가르기의 궁극적 목표는 내집단에 대한 충의라고 볼 수 있지요. 그리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집단 구성원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 특혜, 권리, 복지 등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그런 특권만 누리고 의무는 다하지 않는 무임승차자가 늘 발생하고, 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충성심을 테스트하는 절차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그 예로는 특정한 유니폼을 입게 한다든지, 아니면 특정한 의무를 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문신을 반드시 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외집단 구성원에 대한 반감에 대한 증거를 요구한다든지 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런 테스트를 거친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내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평가하는 시기와 자리가 있게 마련이고요.
만약 누군가 자기의 편에게 위해를 가했다면 그것은 집단으로서는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사태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용인하는 순간 구성원들은 집단이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충성도는 급락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모든 집단은 외부의 적만큼이나 내부의 적에게 가혹한 처벌을 하고, 사실 대부분의 경우 훨씬 더 가혹한 형을 내립니다. 배신은 절대로 용인될 수 없는 죄라는 인식이 구성원들의 머리에 깊이 각인되지 않으면 분명히 같은 일이 또 발생할 것이니까요. 그래서 배신을 하거나, 동료들에게 등을 돌린 이에게는 최악의 형벌인 추방형이 내려졌습니다. 추방이라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던 때가 있었지요. 왜냐하면 과거에 인간은 혼자서 생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 다크 나이트에도 추방 exile 되는 인물이 나오고, 영화 존 윅에서도 매일 하는 소리가 파면 excummunicado 인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내외집단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우리의 습성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되 폭력이나 복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 대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의 행동을 배신이라고 불러야만 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분노한다고 하더라도 화를 느꼈기 때문에 그것들 반드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저 화를 경험하긴 했으나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으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