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마다 어휘 노출 숫자가 3200만 개까지 차이날 수 있습니다. | 언어 자극의 중요성 | 독서와 어휘력의 중요성 |
베리 하트와 토드 리슬리의 연구에 따르면 빈곤한 환경에서 자란 어린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만 4세까지 노출되는 단어의 숫자가 3200만 개까지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이 연구의 제목은 “이른 참사 Early Catastrophe”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언어 자극이 필요합니다. 언어는 우리에게 인스톨되어 있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칩셋은 미리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문화권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어떤 언어를 배우는지가 결정되고, 이것이 인종과는 완전히 무관한 것을 보면 이것이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어를 배우는 데는 분명히 어떤 한계 시점이 있어서 만 12~14세 정도가 지나면 모국어를 구사하듯 제2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조금 박한 연구자의 경우 5~10세가 넘으면 모국어처럼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충분한 언어 자극에 노출되지 않은 아이들은 언어 발달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역시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기가 아무것도 못 알아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해도 우리는 아이에게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말을 건네나 봅니다. 이런 언어에 엄마어, 모성어(motherese)라는 공식 명칭까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언어 자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 연구자들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아이들이 노출되는 어휘의 숫자에 매우 큰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외국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누적 숫자가 3200만 개에 달한다는 것은 아이가 채 5세가 되기도 전, 인생의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이미 어떤 중요한 것, 어떤 거대한 것이 결정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이것이 그렇게 큰 차이가 아닐지도 모르고, 장기적으로는 조금 뒤처진다고 해도 나중에는 다 따라잡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꽤 높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부모의 소득에 따라 집에 보관된 아이들을 위한 책의 권수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하네요. 소득 상위층의 가정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 200권 정도 있었던 반면, 소득 하위층에는 단 한 권도 없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부모의 소득이 높지 않은 아이들은 이중고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듣는 어휘의 스펙트럼은 한정되어 있으며, 부모와 대화를 하는 양 자체도 적고, 그것을 벌충하기 위해 차근차근 어휘를 쌓아 올리면서 읽어볼 자료도 부족한 것이지요. 이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어휘력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어휘력은 꽤 중요합니다.
다양하고 넓은 어휘 스펙트럼을 가진 이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이는 대인관계에서 매우 막강한 무기가 됩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구성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면 상대를 설득하기도 쉬워지고, 자기주장에도 더 힘이 실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은 어휘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미지로 생각한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은 이미지로 생각한다는 말을 해서 생긴 착각이지요. 우린 아인슈타인이 아닙니다. 어휘가 풍부하면 상황에 대한 사고를 깊이 다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조건 더 좋은 결론을 내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어휘가 풍부하면 충동적 행동을 덜 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할 어휘를 갖고 있다면 자극이 발생했을 때 바로 행동으로 비약하지 않고 중간에 설명 과정을 끼워 넣어 장기적으로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을 좀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결정적으로 어휘가 풍부하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조금 더 잘 들여다보고 조금 더 잘 다룰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감정 세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좋다, 나쁘다의 두 가지 감정 밖에 없는 사람과 수십 가지 감정 표현 어휘를 가진 사람은 분명히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당연히 사건과 사람에 대한 대응도 다릅니다. 보다 세밀하고 세련되고 성숙한 대응을 할 수 있게 되겠지요.
어휘, 그것을 담고 있는 매체 중 현재까지 부작용이 확정되어 있지 않은 유일한 매체인 책, 그리고 그것을 읽는 독서라는 행위, 이 모든 것은 어른들에게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리고 집단에게 받아들여지길 원합니다.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 우리에게는 언어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뀐다고 해도 어휘를 갈고닦는 것의 중요성을 폄하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