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 | 초저출산율 | MZ세대의 이기심? | 현대인과 수렵채집민의 공통점

RayShines 2023. 3.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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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이 큰 문제라고들 합니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8명이라고 하는 뉴스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며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를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2017년에 한국을 방문했던 라가르드 IMF 총재가 “한국은 집단자살 사회”라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합계출산율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입니다.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란 독립 의지를 가진 개인들 사이에 맺어진 사회적 계약의 산물이므로 개인보다 상위의 개념일 수 없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회계약설이 그것입니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에 필요에 의해 국가가 생겨났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누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국가나 정부란 개념을 발명해 낸 것은 아닐 것이며, 사회를 구성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속성이 자연스럽게 개개인의 권리를 어떤 실체에 위임하는 과정 속에서 정부나 국가라는 개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부가 세워진 뒤 정부를 운용하기 위해 개인을 채워 넣은 것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개인이 모여서 살다 보니 발생하는 다양한 위험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발생한 구조가 정부이고 국가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우리의 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문화에서는 아버지와 스승과 국가가 하나이고, 내 모든 것은 부모가 준 것이고, 내 이름보다 가문의 이름이 더 중요합니다. 집단의 필요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고,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도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꾼을 생산하고, 국가의 유지에 필요한 구성원을 공급하고, 대를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한 집단적 성격이 있습니다.

 

 

정착 생활을 하기 전에는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기 전, 그러니까 수렵채집민이던 시절에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적응에 굉장히 불리했을 것입니다. 하루 만에 걸어서 왕복할 수 있는 거리 내에 있는 과일들을 모두 소비한 이후에는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데 어린아이들이 너무 많으면 기동력을 크게 저해합니다. 수렵채집민 어머니가 원활하게 옮길 수 있는 아이의 숫자는 한 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네 살의 터울을 유지했으리라고 보는 의견이 있습니다. 네 살 정도 되면 둘러업지 않아도 자기가 어느 정도 걸을 테니까요.

 

그런데 농경 생활이 시작되며 정착을 하게 됐습니다. 경작지는 옮길 수가 없고 그 자체가 재산입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경작은 노동집약적입니다. 과거에는 노동집약성이 더 심했겠지요. 게다가 정착을 하며 아이의 터울도 두 살 정도로 줄었습니다. 아이를 더 많이, 촘촘히 낳게 됐습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의 숫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었지만, 그만큼 노동할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노동력이 많아져서 경작지의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은 증가했을 테니 농경민들은 아이를 많이 낳았을 것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단순히 후손이 아니라 노동력이었습니다. 그 자체가 자산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성장하는 데 매우 오래 걸립니다.

원래 인간은 늦되는 동물입니다. 사회 내에서 자기 몫을 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새끼 얼룩말은 태어난 지 45분 만에 달리고, 돌고래는 태어나자마자 헤엄을 치는데 반해 인간은 태어나자마자는 혼자 자세를 바꾸지도 못합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는 시간도 9개월이나 걸리는데 태어난 뒤에도 단독으로 생존할 수 있을 때까지 아무리 짧아도 6년 이상 걸립니다. 15세가 되면 스스로의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스스로의 안전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 살 수 있다고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15세에 성장이 완결된다고 믿는 부모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라면 10살 남짓만 되어도 자기 몫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부모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이라면 착취당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을 테고 서서히 나이가 들면서 노동에도 익숙해지고, 사회화를 거치며 자연스레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산업 구조가 너무 크게 바뀌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육만 받고 할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있긴 하지만 그런 일은 대단히 보수가 적거나 위험하거나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쉽게 말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이지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것이 큰 핸디캡으로 작용합니다. 실제로 만족할만한 보수를 받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는 교육 수준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하고, 그것이 이제는 단순히 대학이 아니라 대학원 이상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고등교육을 충실히 받아도 엄청난 경쟁을 뚫고 들어가야만 미래 계획이 가능한 정도의 보수를 받는 직장을 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안 그래도 자연계에서 가장 늦되는 동물인 인간의 사회적 상황이 사회 진출의 시점을 더욱더 늦추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진출이 늦어지는 만큼 돈을 버는 데까지 드는 시간과 비용은 증가하고, 돈을 버는 시기가 늦어지는 만큼 이전까지 쓴 돈을 갚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 진출 시기가 늦어지고, 그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출산율에 있어서만큼은 아주 큰 문제가 됩니다. 아이를 낳는 시점도 그만큼 늦어지게 되니까요. 출산연령이 늦어진다는 것이 단순히 산부인과적 리스크가 증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하면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시기가 짧아진다는 의미도 더해집니다. 쉽게 말해서 힘이 있을 때 아이도 낳아야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제 아이는 자원을 생산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소모하는 사치품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가 더 이상 노동력이나 자산이 아니라 사치재인 시기가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만큼 부모는 아이를 부양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전에는 15살만 되면 자기 몫을 했는데 이제는 30살이 되어도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부만 하는 데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자기가 그 돈을 버는 이들도 있겠지만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는 이들도 많겠지요. 다시 말해서 이제 부모들은 최소한 25년, 혹은 30년 이상도 자식을 돌봐야 합니다. 아이가 하나라는 가정 하에 그렇습니다. 아이가 셋이라면 그 기간이 35년에서 40년으로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 보유세가 나옵니다. 이제는 아이를 낳으면 그것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을 아주 크게 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사회 진출이 늦어지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충분히 체감하게 된 성인들이 된 미혼 남녀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의 사회경제적 의미를 아이를 낳기도 전에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철 모르고 결혼하던 시대는 이제 지난 것이지요. 아이 한 명을 기르는 데 돈이 얼마나 든다더라, 학군지에 집이 얼마라더라, 어느 집은 사교육비가 한 달에 얼마가 든다더라 하는 정보는 차고 넘칩니다. 아이를 낳아서 발생하는 좋은 것들에 대한 내용들도 있긴 합니다만, 아이를 키우면서 발생하는 어려움에 대한 글에 더 눈이 가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아이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은 더 그렇지 않을까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인 MZ 세대들의 이기심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없어질지 모르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은 젊은 세대들에게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국가가 무슨 소용일까요, 국가는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큰 데 말입니다. 이전 세대들이 더 희생적이고 전체를 생각하고 내 앞에 국가를 두었기 때문에 출산을 많이 했던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 부흥기에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고 면접만 봐도 돈을 주던 시대이기도 했고, 사교육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살려면 집이 필요한데 살고 싶은 곳의 집은 감당이 안 되는 가격이니까요. 집에 없으면 정주할 수 없고, 정주할 수 없으면 아이를 낳기 어렵습니다. 수렵채집민들이 아이를 많이 낳지 못했듯이, 우리도 지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참고 서적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장하준)>, <총, 균, 쇠(재러드 다이아몬드)>, <성인아이(존 C. 프리엘, 린다 D. 프리엘)>, <더 브레인(데이빗 이글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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