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결혼 출산 양육 | Z세대와 기성세대의 차이 | 비혼이 이기적 결정일까요

RayShines 2023. 5. 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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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이란 참으로 어려운 결정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이기적 결정은 아닐 것입니다.

 

 

 

과거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있는 목적과 운명에 가까웠습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결혼을 하지 않는다, 아니면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의도적으로 낳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사회에서는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이들은 응당 완수해야 할 책무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사람들이며,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지 않은 이들은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들이라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존 가치에 순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 혹은 사회적 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낙오자라는 비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비혼을 선언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 딩크족으로 살겠다는 것 등의 선택이 과거에 비해 자연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비난일색으로 바라보던 시각은 조금 사라지고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더 나아가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어졌고, 이것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이해가 생겼으니까요.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물려받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포괄인수방식이어서 좋은 것만 취하고 나쁜 것은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깡그리 통째로 가지고 온 뒤 거기서 살아나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세대 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경제 성장이 약속되는 시기가 아닙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 때만 해도 면접을 보러 온 지원자들에게 돈봉투를 줬다고 합니다. 면접비라는 명목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지원만 하며 서너 군데의 기업에 합격하는 것도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합니다. 경제가 팽창해내가는 속도보다 인력이 공급되는 속도보다 빨랐던 호황기였고, 일을 하고 월급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던 시기, 즉 미래에 대한 가시화된 비전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젊은 세대들의 눈에는 단순히 호시절에 태어나 경제성장의 수혜를 받은 기성세대들이 꿀을 빤 세대로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사실 단순히 동일 연령의 기성세대와 현재 젊은 세대를 놓고 봤을 때 지금의 세대들이 훨씬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학교만 졸업한 것이 아니라 대학원도 졸업하고 인턴쉽도 이수하고 갖가지 경험을 이력서에 채워 넣어야 간신히 취업이 되니까요. 과거에는 없던 일이지요.

 

그러니 단지 운 좋게 좋은 시절에 태어나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세대들이 만들어둔 제도들이 젊은 세대들의 눈에 좋게 보일리 없겠죠.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둔 불합리하고 고압적인 관행, 불평등과 불공정을 부추기는 장치들로 인해 젊은 세대들의 성장이 가로막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성장의 시대인 동시에 자산의 가격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젊은 세대들은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습니다. 자산을 취득하려면 매우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이미 자산을 선점하고 있는 기성세대들로부터 그것을 사 와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월급을 모아서는 엄두가 나지 않고, 또 기성세대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물려주니까 어떤 자산들은 시장에 노출조차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지점이 젊은 세대들이 억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둔 제도에 대한 근원적 회의가 팽배해 있는데, 결혼이라는 제도, 양육이라는 과정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리 없습니다.

결혼, 출산, 양육은 지금까지 인류를 유지해 온 기본적인 제도입니다. 하지만 그 형태는 이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두드러지지 않으나, 영미권 문화에서는 이혼, 재혼, 동성 부모, 혹은 시술을 통한 출산 등 다양한 형태의 결혼, 그리고 출산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형태의 결혼을 보고 자란 비율이 예전보다 낮아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전통적 결혼의 실패를 보고 자란 비율은 예전보다 높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한 사람과 오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자란 사람들만 같은 형태의 전통적인 결혼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으며, 전통적 형태의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특권에 가까워졌다는 말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이혼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그만큼 부모의 결별을 경험한 인구가 많아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전처럼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결속이 타이트하지 않다고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족을 대체할 수 있는 공동체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친구일 수도 있고, 온라인 커뮤니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는 절대 해체되거나 폐기되거나 만료될 것 같지 않았던 가족이라는 관계도 쉽게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직계가족처럼 과도한 책임, 속박, 감정적 소모, 투자를 요구하는 전통적 관계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고, 이보다는 비교적 가볍고 책임은 적고 감정적 낭비를 일으키지 않는 관계를 원하게 될 수 있겠지요.

 

 

 

한 인간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 결혼과 양육입니다.

양육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물리적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자아를 송두리째 내어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양육에 있어 공동체의 역할이 적어지고, 개인의 힘이 부칠 때 이를 완충해 줄 장치가 완전히 사라진 지금 현대 사회에서 양육은 완전히 개인의 책임이 됐습니다. 먹고살기도 힘들고, 집 한 칸 마련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찌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견 불합리해 보이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양육이라는 시스템이 유지되어 왔던 이유 중 하나는 기성세대들까지는 그 불합리성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수용했다는 것이겠지요. 사실 그때는 이 제도를 대체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불합리한 현재의 제도들에 대한 강력한 불신을 보이고 있으며,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아도 받게 될 사회적 낙인도 전보다 희석된 상태입니다. 결혼과 양육에 대한 부정은 단순히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이기적인 태도가 아니라 구태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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