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우리는 자신의 이득에 따라 투표할까요? | 정체성 Identity | 이익에 따른 투표 | 가치와 정체성에 따른 투표

RayShines 2023. 6. 1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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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는 사람들이 투표를 할 때 자신의 이득에 따라 투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늘 그렇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투표를 할 때 우리는 당이나 후보의 공약을 훑어보고, 정책이 자신의 이득에 부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에 표를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투표를 할 때의 일반적 상식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부자를 위하는 감세 정책을 펼치는 당에 표를 던지고, 아주 부자인 사람들이 복지 정책 확장을 외치는 후보를 지지하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과 반하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아주 논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생각한 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을 고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에 부합하는 쪽을 고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익이 아니라 정체성에 따라 투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무리 내가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자유가 보장되고,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무한 경쟁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먹고사는 데 전혀 걱정이 없고,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자본가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누구나 최소 수준의 삶은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적극적 사회 복지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이득에만 따른다면 가난한 사람이 복지 국가를 꿈꾸는 것이 맞겠고, 부자들이 무한 경쟁 사회를 원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좇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인이 되면 그런 욕구가 좀 적어지긴 하지만, 인간은 마음속으로 닮고 싶은 대상을 설정해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롤모델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동일시(identification)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만약 이런 상황에 저 사람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내 현실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큰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을 닮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려받은 유산이 아주 많아서 물질적으로 매우 풍족하지만 오지에 가서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형성하는 아주 중요한 방식 중 하나가 이런 것입니다. 자신의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는 어떤 대상, 가끔씩은 매우 이상적으로 포장되어 있는 대상을 설정해 두고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를 그런 이상적 대상이 이끌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의 가치가 내가 원하는 가치와 동일시될 테니까요. 결국 우리는 집값이 오르는 정책을 펼치는 정당을 지지할 수도 있지만, 내가 평등이라는 가치를 더 높이 산다면 그런 후보를 지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매우 큰 괴리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그 괴리를 메우지 못합니다. 사실 이상이라는 말 자체에 현실적으로 다다를 수 없는 곳이라는 내재적 의미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매우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 사람의 현실과 그 사람의 가치가 너무 동떨어져있는 경우 제3자가 보기에는 그것이 위선이나 위악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매일매일 벌어지는 일상적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반사적, 자동적이 됩니다. 원대한 이상을 염두에 두고 그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거대한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할 때와 저녁 메뉴를 고민할 때 우리는 다르게 움직이니까요.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볼 때 우리는 그 사람들의 일상을 봅니다. 사소한 말과 행동, 그리고 무엇을 사는지, 어디 가서 무엇을 먹는지 등을 봅니다. 그 사람의 이상과 가치는 일상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으로 대상을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이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자연스레 우리는 그 이상이 그 사람의 일상과 일치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불일치가 있으면 이상하다고 느끼지요. 정작 본인은 그 상황이 너무나 자연스럽겠지만, 제3자가 보기에는 그것이 잘 처리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간극이 크면 클수록 더 그렇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지지 정당이나 투표로 나타날 때 우리는 가끔 당황하기도 합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본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가 현실의 아주 작은 구석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정치는 가장 위에는 가치가 놓여 있습니다.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냐가 미리 설정되어 있어야만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여야만 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장치들을 고안할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의 현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와 무관하게 자신이 높게 생각하는 가치를 따르고 싶어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얼마나 돈을 버는가, 그리고 그에 따라 내가 무엇을 먹고 입는가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가 누구인가, 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일 것입니다.

 

참고 자료 :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조지 레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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