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인간은 참으로 만족하기 어려워 합니다. | 증류 기술의 개발

RayShines 2024. 11. 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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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상태에서 10도 이상의 도수를 가진 술을 만들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보다 훨씬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증류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약한 도수의 술로는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자연환경에서 알코올은 설탕이 이스트, 물과 반응하며 발생하는 발효작용을 통해 생겨납니다.

잘 익은 과일의 당분과 수분을 이스트가 발효하면 알코올이 산생되는데 그래서 농익은 과일에서는 달큰한 알코올의 향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스트가 생산한 알코올의 양이 너무 많아져서 그 도수가 10~15%를 넘게 되면 이스트는 자기가 만들어낸 알코올에 빠져 사멸하며 더 이상의 알코올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술을 도수는 10~15% 정도가 최대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40도, 50도, 80도가 되는 술들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증류라는 기술이 개발됐기 때문입니다.

 

증류는 증발과 응축을 통해 불순물을 제거하며 액체 형태의 농축된 정수만을 추출하는 기술입니다. 문헌적으로 증류는 기원전 2000년 경 중국, 이집트, 혹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수천 년에 걸쳐 유럽으로 파급되었고, 11~13세기에는 수도사들을 통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 전파되며 현재의 위스키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10도 정도의 알코올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증류 기술은 거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물이 대부분인 수술을 마시려면 너무 많이 마셔야 하니, 적은 양으로도 빨리 취하고 싶다는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증류 기술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자연적으로 알코올을 만들어내는 양조 기술은 너무나 쉬운 기술이었고, 그것을 응축하는 증류 기술은 그것보다는 어려웠을지 모르나 보편적 기술이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술이 좋은 물질이냐 아니냐는 참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음식 중 하나로 보자면 그런 거 같지만, 또 물질 중 하나로 보자면 또 그런 것 같고요. 전 세계 인구의 85% 정도가 음주를 하지만 이들 중 문제가 있는 음주 수준에 빠지는 비율은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85%의 10%인 8.5%의 알코올로 인한 위험에 빠진 인구를 위해 양조 산업, 증류 산업 전체를 폐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알코올은 너무나 큰 산업이니까요. 그리고 위험하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폐기해야 한다면 자동차도 없어져야 할 도구 중 하나라는 논리에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은 연간 2500명 정도이고 알코올 관련 질환 사망자의 수는 연간 1000명 정도이니 말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우리 인간이 참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갈수록 더 강한 것, 더 재미있는 것, 더 자극적인 것, 더 편안한 것, 더 맛있는 것, 더 빠른 것을 찾는 것이 우리 인간의 속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쏟아지는 디지털 컨텐츠들을 보면 - 제 생각에는 - 예전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빠른 것 같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매우 전위적이고 도발적인 영화나 소설은 있었습니다만, 전체 컨텐츠 중 비율을 따져보면 지금같이 많진 않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그냥 제 개인적 생각이고 통계나 수치적 근거는 없긴 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빠른 무언가, 더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무언가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각 국가마다 10~20대들의 유행이 각자 달랐었는데, 이제는 전 세계 10~20대에게 유행하는 것들이 거의 비슷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SNS나 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유행이 퍼져나가니 국지적인 유행이 발생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고, 국지적 유행은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글로벌하게 촌스러운 것이 돼버리는 세상인 것이지요. 증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는 수천 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의 유명 아이돌이 먹는 라면이 전 세계로 펴져나가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는 것이 지금의 세상입니다.

 

변화는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다만 가끔 드는 생각은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족할 수 없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지만, 정말 우리의 마음속 깊이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만족시키는 것 역시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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