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학파의 학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자면 아우렐리우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편 중독자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은 마음이 끌릴 때가 있는 그런 철학입니다. 무슨 일이든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마음을 갖고, 사물의 덧없음을 이해하고, 늘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소박하고 불편한 삶을 살라는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은 복잡하고 숨 막히듯 쫓기고 많은 것을 성취해야만 성공적인 삶이라고 강요하는 현대인에게 뭔가 도를 닦는 것 같은 기분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스토아의 현자 중 한 명이 바로 로마 5현제 중 마지막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였습니다.
그는 후기 스토아철학을 대표하는 저서인 명상록의 저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혹은 인터넷을 찾아보면 아우렐리우스가 아편, 요새로 치면 오피오이드 계통 약물에 매우 깊이 중독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아편은 양귀비에서 추출되는 물질입니다. 아우렐리우스가 아편 중독자였다고 해서 아편이 로마 시대부터 쓰였던 것은 아니며, 실제로는 기원전 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도 아편이 쓰였다는 최초의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고 할 정도로 유서 깊은 물질입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인, 고대 그리스인들도 아편을 의학적, 종교적 용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였으니, 우리로 치면 늘 곁에 어의를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우렐리우스의 어의였던 갈레노스는 아편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기록 상으로는 그게 아침마다 아편 한 조각을 와인에 녹여 마시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했다고 하며, 다뉴브 원정 기간에는 아편을 복용하지 못해 금단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고도 합니다. 아편의 금단 증상은 동공 확장, 근육통, 콧물, 눈물, 하품, 발한, 설사 등이지요. 이런 증상은 워낙 두드러지는 것이니 아마도 그를 가까이서 대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스토아 철학의 기본적 명령은 삶을 살면서 발생하는 감정을 최대한 거부하고, 뭔가를 맞닥뜨렸을 때 발생하는 감정적 인상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세계에 초연하는 대신 자신에게 집중하여 평정심에 도달하라는 것이지요. 이를 주장하고 가르쳤던 아우렐리우스가 그런 마음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 혹시 아편이 주는 안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의심하는 학자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장 물질적 세계를 거부하는 스토아 철학이 물질에서 비롯되었다고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통 온 세상이 물질을 좇는 데만 혈안이 된 지금, 스토아 철학은 아우렐리우스의 아편과는 무관하게 의미를 갖는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믿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우렐리우스처럼 존경받는 현자로 기억, 혹은 기록되는 인물조차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 보고자 혹은 자기 스스로 느끼는 자신의 신체적 상태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고자 물질에 의존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아침에 일어나 억지로 일하고자 하는 상태로 우리를 몰아넣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하루 종일 고되게 일한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술을 마시니까요. 우리 역시 우리의 기분과 감정 상태를 조절하기 위해 물질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요새는 그뿐 아니라 SNS, 숏폼, 게임 등 디지털 매체는 실체는 없지만 실재하는 디지털 물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술이나 마약보다 훨씬 더 구하기 쉽고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씩 사용할 수 있지요. 그래서 더 위험한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스스로 기분과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만용을 부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조절하기 위해 외부의 무엇엔가 의존합니다. 스토아에서 이야기했던 최대한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 그것은 지나가는 것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가르침은 솔직히 우리가 그것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일 수도 있겠지요.
만약 우리가 우리의 감정이 매우 자연발생적인 것이며,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여지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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