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상식이라고 하지요. 나 스스로 충분한 상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상식적인 사람들을 두는 것도 삶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상식을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라고 정의해두고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만 사실 어디부터가 상식이고 어디까지가 상식인지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고, 직업마다 다르고, 문화권마다 다릅니다. 어떤 직군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지식들이 다른 직군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집단에서는 이런 게 상식인데 다른 집단에서는 저런 게 상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의 상식의 괴리도 매우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상식은 매우 유동적인 것으로 보이며,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매우 크게 변화합니다.
상식은 매우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상식이냐 상식이 아니냐의 판단도 그렇습니다. 어떤 명제가 상식이냐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매우 직관적 판단을 내립니다. 만약 숙고를 하라고 강요한다면 그때는 판단의 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은 이미 결정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식은 인지의 영역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며, 특히 도덕적 상식, 윤리적 상식들은 훨씬 더 직관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우 가까운 근친 간의 혼인이 왜 성립할 수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논리적 이유를 제시할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 계속해서 설파되어 나간 후에 대부분의 응답자는 “그냥 안 된다”는 답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도덕적 말막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가 내리는 상식적 판단에 명확한 논리적 근거가 없다는 증거로 많이 쓰입니다.
상식에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해서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상식의 정의처럼 “보통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는 것들”이라는 것들은 쉽게 말해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며,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다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사회를 원활하게 살아가는 데 있어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는 편이 낫겠지요. 물론 그것이 부당하다면 개선해 나가야 하겠으나, 그게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은 성인이 되면 누구나 깨닫게 됩니다.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할 현실입니다.
사실 이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종류의 상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내 삶을 편안하게, 혹은 풍요롭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나와 삶을 많이 공유하는 사람들이 내가 보기에 “얼마나 상식적인 인간이냐”는 것은 나의 삶의 질을 매우 크게 결정짓는 요소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생각하는 상식과 내가 생각하는 상식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면 - 물론 우리 모두 보통 사람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의 종류나 기준이나 내용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 사소한 결정부터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까지 매번 협상, 혹은 절충을 위해 많은 인지적 자원을 소모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감정적 반응이 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서로에게 공감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높아지고, 그에 따라 감정적 거리가 커질 가능성도 꽤 높지요. 흔한 말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결국 “상식의 종류와 그 폭과 깊이”가 비슷한 사람이라는 말과 거의 같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짧은 문장만으로도 이후 대화에 이어질 내용이 부드럽게 연결되는 것은 마찰을 매우 크게 줄여주니까요. 그런데 어떤 것을 이야기할 때 어떤 개념에 대해서 미리 설명을 해야 한다면 그 자체가 자원과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자체가 즐거운 일일 수도 있지만, 반복되면 아닐 수도 있지요.
나의 상식과 누군가의 상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분쟁은 분명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 상식이 다른 사람에게 나와 같은 상식을 설치하도록 강요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사실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나와 상식이 비슷해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누군가를 나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으로 억지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평소에 든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라는 말의 의미 | 가끔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20) | 2025.01.21 |
---|---|
내가 슬픈 것일까요, 내 기분이 슬픈 것일까요? (298) | 2025.01.11 |
주식 투자와 영웅 신화 | 인덱스 펀드 vs. 개별 종목 | 큰 수의 법칙 | 대수의 법칙 (247) | 2025.01.09 |
배신자에 대한 분노 |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편을 가르는 인간의 본능 | 최악의 형벌이었던 추방 (305) | 2025.01.04 |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요? 아이는 작은 어른일까요, 아니면 아이는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존재일까요? (251) | 2025.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