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우리가 아주 흔히 쓰는 말 중 하나가 “그거 한다고 누가 알아주냐”,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열심히 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이런 말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회를 구성해서 살아갑니다.
혼자 살지 않는다는 뜻이며, 이는 곧 혼자서는 생존하기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내가 하는 어떤 행위를 타인이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있음에 분명합니다. 내가 하는 행위가 생산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기여하는지, 그래서 그것을 누군가 알아주는지, 즉 누군가 그것을 인정하고 승인하는지는 중요하지요. 만약 그것이 경제 활동이라면 타인이 내 행위를 얼마나 인정하느냐에 따라 그 행위의 가치, 즉 내 시급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니 중요하지 않을 수 없지요. 우리가 하는 많은 행위의 목적은 종국적으로는 먹고살기 위한 것이니까요.
우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부여받은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매우 중대한 문제입니다. 또한 우리가 가진 자원을 어디에 쓰는지 역시 그만큼이나 중대한 문제입니다. 개개인이 자원을 어디에 분배하느냐가 사회 전체의 자원 배분을 결정할 수 있으므로, 남들이 알아주는 것에 내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알아주는 것에는 남들도 자원을 투입할 것이고, 그러면 그것의 가치는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렇게 해야 가치 상승에 편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남들이 알아주는 것”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는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사회, 경제적 가치나 배분되는 자원에의 편승이라는 계산을 차치한다면 누가 알아주는 것을 하는 것, 혹은 그런 것을 해야 내 스스로도 만족을 하는 것은 내 삶을 타인의 위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논리에 비약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만, 늘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맞추려 노력하는 삶을 오래도록 살아왔던 이들이 중년이나 말년에 너무나 큰 공허감을 느끼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물론 누군가의 승인을 충분히 받으며 충만한 삶을 사는 분들도 많으니 이것이 인과관계를 의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 중 어떤 부문에서는 남의 눈치를 보고 타인의 이목을 고려해야 하지만, 어떤 부문에서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타인 위주의 살게 되며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하는 채워지지 않는 의문이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탐색과 자기 성찰이 필요한 문제이며, 시간과 정신적 자원을 투입해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욕망이 원하는 것,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본능에 따르는 것은 주도적이며 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만족을 지연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게 아닐 것입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나를 찾는 것일 것입니다.
아마도 타인이 원하는 것만 해서는 나를 찾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져 있다고 해도 우리가 가진 물리적, 정신적 한계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가까울 수도 있는 문제이지요. 내가 먹고살기 위해 타인의 기준에 맞춘 무엇인가를 하는 건 절대로 부끄러운 일은 아니고 비난받을 일도 아닙니다. 나 자신이 생존하는 것,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그것을 위해 일을 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삶을 살며 삶의 조그마한 조각 하나 정도에 대해서만큼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나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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