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알고 있는 진실은 과연 진실일까요?
우리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몽주의자들은 시공을 관통하는 한 가지 진리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치기도 했고, 아이작 뉴턴이 땅과 하늘의 모든 물체의 운동에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을 찾아낸 뒤 그런 유일한 진리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이 모든 아이디어 뒤에는 진실, 진리, 사실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근본적인 믿음이 숨어 있습니다. 개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진리나 진실이 아니라 의견이니까요.
그래서 이것에 대한 실험을 한 연구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솔로몬 애쉬라는 이름의 심리학자였습니다. 그는 123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는데, 대략 3분의 2 정도의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기 위해 잘못된 답을 내놓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본인이 틀린 답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답을 고수하는 경우 역시 37%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이 실험은 1950년대에 이루어졌는데, 50년 후인 2005년에는 그레고리 번스가 비슷한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fMRI를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집단과 같은 의견을 낼 때에는 우리에게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보상영역에 불이 켜지고, 집단의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낼 때에는 주로 부정적 정서에 관여하는 편도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집단의 의견을 따라가는 것을 선호하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설명해 줍니다.
자신의 의견이 아무리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이 사실을 넘어선 진실이라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속한 집단 구성원의 대부분이 그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진실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믿는가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리고 남들이 무엇을 믿는다고 내가 생각하는가도 매우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내가 A라는 것을 믿고 있다고 하죠. 그리고 내가 속한 집단의 대부분도 A라는 것을 믿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모종의 이유로 - 정치적 이유, 경제적 이유, 혹은 리더가 B를 믿어서 - 로 A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서 모두 겉으로는 B를 믿고 있다고 말하는 집단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나는 실제로 A라고 믿고 있지만 주변인들이 전부 B를 믿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나도 겉으로는 B를 믿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야 배척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A를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집단은 B를 믿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게 되고 실질적으로는 B를 믿는 집단이 됩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은 침묵합니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일은 매우 실제로 매우 흔하게 벌어집니다. 여기서 진실은, 혹은 진리는 A일까요, B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의 상당수가 상호 주관에 해당합니다.
랩탑이나 책생이란 물건은 객관에 해당합니다. 주관이란 내 마음속에만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나의 랩탑에 대해 가지는 의견은 주관입니다. 반면 상호 주관이란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유되고 있는 추상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다수의 마음속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폐, 환율, 종교, 국가 등은 모두 상호 주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믿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한때 존재했던 소련 - 소비에트 연방 - 이라는 국가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모든 이의 상호 주관에서 거의 동시에 언인스톨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세계 열강의 권력자들 몇몇이 모여 서류에 사인을 한 것으로 소련은 사라졌으니까요.
상호 주관에 기대고 있는 진실은 추구하거나 고수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저 의자가 빨간색이라고 말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가 봐도 명확한 객관에 대해서 강력한 권한과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수정을 가한다면 지록위마라는 사자성어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가끔은 “왜?”라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라고 묻는 것이 무례한 건 아닌지, 모난 돌이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가끔 갖는 의문이 진실이 진실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주는 시작이 되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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