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나일까요, 내 주변의 질서일까요? | 순수의 시대 | 이디스 워튼

RayShines 2025. 1. 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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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둔 규칙이나 관행을 지켜야만 합니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된다고 해도 그렇게 해야 될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 이디스 워튼이 쓴 소설 <순수의 시대>를 읽게 되었습니다. 책장에 오래도록 꽂혀 있던 책인데 한 번도 읽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가 계기는 알 수 없지만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한 영화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아래 부분에는 아직 소설을 읽지 않으셨거나,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들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이 이야기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사회적, 도덕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사랑이 이야기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뉴랜드 아처는 메이 웰랜드와 약혼을 한 사이입니다. 메이 웰랜드는 자신의 이름인 5월처럼 아름답고 매력 넘치는 여성입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엘렌 올란스카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엘렌은 메이와는 친척지간이고, 결혼을 했으나 이혼을 하고자 하는 여성입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은 결혼과 이혼이 매우 자유롭고, 이혼을 몇 번씩이나 해도 사회적으로 전혀 지탄받지 않는 나라이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말, 예전의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사교계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상류층의 사회는 사소한 말 한마디, 옷매무새, 식사 예절, 자리 배치, 행사장에 도착하는 시간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모두 규칙이 있습니다. 어디에 쓰인 성문법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어 있는 불문율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무섭지요. 정해진 게 아니니 사교계에 큰 영향력을 가진 몇 사람이 모여 상의를 하고 나면 바뀔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일 테니까요. 사람들은 사교계의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의 존재와 무게감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규칙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뉴랜드와 엘렌은 서로에게 끌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뉴랜드는 파혼을 해야 하고, 엘렌은 이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엘렌의 남편은 유럽에 있기 때문에 이혼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엘렌과 메이는 혈연관계이니 일은 더 복잡해집니다. 지금으로 봐도 쉬운 상황이 아니니 그때는 더 했겠지요. 뉴랜드는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메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확고하다는 것을 세상, 사교계,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선언하기 위해 결혼을 강행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제도로 말끔히 지워낼 수 없는 것이었는지, 뉴랜드와 엘렌은 서로를 잊지 못합니다.

 

 

 

뉴욕의 사교계는 마치 하나의 인격체처럼 움직입니다.

그리고 어디에나 지켜보는 눈을 가진 감시자처럼 행동합니다. 뉴욕은 뉴랜드와 엘렌의 관계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 채 하고 있었고, 결국 그들의 관행에 따라 결정을 내립니다. 그 결정은 엘렌을 뉴욕에서 추방하기로 한 것이고, 그것은 송별회의 형태로 치러집니다. 외국으로 나가는 엘렌을 환송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엘렌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에는 전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들의 세계에서 엘렌을 밀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숨어있습니다. 엘렌과 뉴랜드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항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서로 멀어진 채로 각자의 삶을 살게 되고, 그렇게 세월이 흐릅니다. 그 사이에 메이는 사망하고, 뉴랜드의 아들이 장성하여 파리에 살고 있는 엘렌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뉴랜드를 초대합니다. 뉴랜드는 엘렌의 집 앞까지 갔지만, 그리고 그에게는 그를 가로막을 그 어떤 장애물도 없지만 그것이 자신답지 않다고 생각하며 뒤돌아섭니다.

 

 

 

뉴랜드 아처라는 이름은 우리의 생각대로 Newland Archer 입니다.

그는 새로운 땅이라는 뜻의 자신의 이름과 궁수라는 뜻의 가문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소설 중간중간에 메이에 대해 묘사할 때 그녀를 사냥의 여신이자 훌륭한 궁수였던 다이애나, 그리스 이름으로는 아르테미스에 비유합니다. 둘 다 궁수이니 이 두 가지가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인 뉴랜드, 즉 새로운 땅은 아마도 엘렌과 통하겠지요. 엘렌과의 삶을 선택한다면 그는 아마 뉴욕을 떠나, 혹은 뉴욕에서 추방 당해, 새로운 땅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고, 숨을 쉬듯 누리고 있던 그 모든 특권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고요. 그러나 우리는 이름은 쉽게 바꿀 수 있지만 성, 즉 가문의 이름은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그는 결국 아처라는 이름으로 벗어날 수 없었고, 그의 삶에 존재하는 또 다른 궁수인 다이애나, 메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메이도 뉴랜드가 무엇을 포기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아버지가 아주 큰 것을 포기했던 사람”이라고 알려줍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나를 찾는 것일까요, 나를 둘러싼 삶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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