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현재는 미래로 가는 관문이겠지요. | 미래와의 단절이 주는 두려움과 현실 도피를 피하는 방법 | 시간의 선형성과 비선형성

RayShines 2025. 1. 14. 00:00
반응형

우리는 시간이 과거로부터 와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즉 시간은 선형적으로, 마치 강처럼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적으로 이것이 성립하는지와 별개로, 우리 모두는 이런 생각을 갖고 삽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늘 변합니다. 과거의 내가 썼던 글을 보면 놀랄 때가 있지요.

내가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 이상하고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내 사진을 봐도 비슷한 감정이 들 때가 있지요, 지금의 나와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내 목소리를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마치 나와는 완전히 별개의 사람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마치 제3자의 목소리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시공을 꿰뚫고 존재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것은 우리의 뇌가 과거, 현재, 미래 사이를 서사, 즉 이야기라는 풀로 촘촘하게 이어 붙이기 때문입니다. 촘촘하다는 표현이 틀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엉성하게 붙이는데도 우리는 그것이 엉성하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의 기억은 허술하고 변형되며 왜곡되고 삭제되며 압축되고 연장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서사는 그런 불완전한 기억들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기만일 수도 있고, 인간이 가진 매우 정교한 수준의 인지 기능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그게 아니면 단절적으로 존재할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 자신을 하나로 묶습니다.

 

 

 

따라서 이 흐름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난 과거의 기억을 지닌 채, 과거로부터 현재로 와서 지금 여기에 있다. 그리고 난 여기서 현재의 기억을 만들어 그것을 과거의 기억에 싣고 미래를 간다.” 이 서사의 연쇄는 모든 이에게 작동하는 기본적 방식이며 누군가가 아무리 인간에게는 늘 현재만 있을 뿐 과거는 사라진 것이고 미래는 오지 않은 것이라는 말을 해도 그다지 와닿지 않습니다. 시간은 비선형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매우 매우 선형적입니다.

 

 

 

따라서 이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현재는 과거의 총합체인 동시에 미래로 가는 일종의 관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 나의 현재가 미래에 내가 정말 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으로 가는 게이트웨이라면 그것을 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이자 로고 테라피의 창안자인 빅터 프랭클은 존재의 위기라고 불렀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빅터 프랭클은 “현재 상황과 미래에 되고 싶은 것 사이의 단절”로부터 “존재의 위기”가 기인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매우 와닿는 이야기이지요.

 

 

 

내가 지금 현재를 사는 것은, 물론 삶이 주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미래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태초부터 결정되어 있었다고 믿는 결정론자가 아닌 이상에야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내리는 지금의 결정이 미래를 궤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면서 삽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할 테니까요. 즉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제하기 어렵지만, 미래에 어느 정도의 - 그것이 매우 미미할지라도 - 영향력을 가진다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전 그것이 어느 정도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결정이 차곡차곡 쌓이며 미래를 변화시키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 나의 현실이 내가 정말 원치 않는 미래로 가는 경로라면 누구나 불안하고 무섭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래서 미래가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혹은 미래야 어떻게 되든지 난 모르겠다, 어차피 불행한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면 현재라도 즐기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빅터 프랭클은 불만족스러운 현재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세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는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 두 번째는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것, 세 번째는 받아들일 수 있는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사실 취하기 어려운 옵션입니다. 물론 운동이나 자기 훈련을 통해 적절한 고통을 줄 수도 있겠으나 아마 죽음의 수용소를 읽어보면 빅터 프랭클이 말한 고통은 그 정도의 고통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창조와 경험, 이 두 가지입니다.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가,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가, 이것은 비교적 우리의 통제력 하에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올 한 해에도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무엇인가를 경험하며 현재가 더 좋은 미래로 가는, 설령 남루하고 구불구불할지는 모르나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는 길이길 빕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