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이 개인에게 뭔가를 강요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체를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개개인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니 무조건적 강요가 옳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무리를 지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한 지능을 가졌고, 허구를 창조해 내고 그것을 동시에 여러 사람이 믿는 것까지도 가능한 고등한 동물이지만 신체적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날 수도 없고, 물속에서 생존할 수 없으며, 달리기 속도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동물들과 싸움이 벌어진다면 질 가능성이 매우 높죠. 하지만 인간이 가진 허구 창조 능력과 시뮬레이션 능력은 눈앞에 펼쳐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대규모의 집단이 예행연습을 가능케 했고 이것은 사냥, 전투 등에 막강한 이점이 됐음에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뭉쳐져 있는 인간은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아주 커다랗고 사나운 동물도 사냥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인간의 생존 능력을 아주 높아졌을 것입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에서도 인간 군집은 살아가는 게 아마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인간에게는 집단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집단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으니까요. 개개인이 필요에 의해서 모인 것이 집단이고, 개개인이 떠나면 집단은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다수가 모인 집단과 한 개인의 싸움에서는 집단이 대부분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 개인은 우리 전부가 떠나면 개인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섣불리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떠났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면 나의 생존만 불리해지는 것이니까요. 결국 집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집단 그 자체는 사람이 아니지만 사이코패스처럼 행동합니다. 개인의 희생에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법인이나 회사가 그렇습니다. 법인이나 회사를 구성하는 개개인은 인간이고 감정과 연민을 느끼지만, 그들이 모여 내리는 복잡한 의사 결정선은 개개인의 죄책감이나 공감을 증발시키고 목적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만들며 개인의 희생이나 노고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과거의 촌락에서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일은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기업에서도 그런 일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납니다. “너 하나 때문에 다 죽을 순 없잖아”라는 말만큼 강력한 말이 없습니다.
물론 항상 이 정도로 극단적인 일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소소한 일에서도 집단은 개인에게 집단적 선택을 강요합니다.
예를 들어 기부금을 낸다고 해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집단의 몇몇이 아주 좋은 뜻으로 돈을 좀 걷어서 어려운 개인을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좋은 뜻이 집단 내에 퍼져나가며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그러면 이 움직임은 더 큰 힘을 얻습니다. 처음에는 돈을 내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이제 그 숫자가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마치 나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집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기부금을 낼 의사가 없던 사람이나 형편이 어려워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될 사람들까지도 집단으로부터 멸시와 비난을 당할 것이 두려워 억지로 기부금을 내게 됩니다. 단체 행동은 그것이 옳든 그르든 무조건적인 선으로 비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면, 관행이 그러하면 그것은 그냥 옳은 것이 되기도 합니다. 설령 나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남들이 다 그렇게 하면 그냥 하면 된다, 집단을 따르지 않는 것은 일종의 배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 집단 내를 휩쓸며 그 원래 의도가 변질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그 과정 중에 누군가 “이것이 옳다, 그러니 다 따라야 한다”며 선전을 하기 시작하면 촉매를 들이붓는 격입니다. 그러면 그 선의에 대해서는 이해하지만 굳이 그 행동까지는 따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 따르는 사람들이 비난할 자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다수, 혹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 되니까요. 그런데 그렇지 않나요? 저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의 압력에 의해서 하게 되면 하고 나서도 별로 기쁘거나 보람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선택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줘서 좋은 일이 이루어지게 두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지켜볼 수 있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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