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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하나의 소우주였다고 한다. 중세 스트라스부르에 있었다는 시계는 행성의 진로, 태양과 달의 궤도, 달의 공전, 요일, 분, 시간을 가리켰다. 이 시대의 시계는 우주의 미니어쳐였고, 개인에게 속한 도구라기보다 공공재에 가까웠다.
시계가 있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 달,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한 달, 일 년을 사는 것에 무리가 없었다. 대부분 농부들이었던 이들의 삶의 주기는 농사의 주기에 맞추어져 있었고, 서두를 필요도 없었으며, 정확할 필요도 없었다. 삶은 뭉텅이로 천천히 흘렀다.
그런데 중세 후반에 정확한 시간에 대한 요구도가 증가했다. 종교 때문이었다. 6세기에 베네딕트 성인은 수도사들에게 하루에 일곱 번 정확한 시간에 기도하도록 명령했다. 최초의 기계식 시계를 조립한 곳이 수도원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농민들이 하루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시간을 처음으로 알린 것도 교회 종탑이었다.
시계가 없던 시절의 시간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공급되는 것이었다. 기계식 시계의 등장은 개인이 자신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루 중 몇 시간을 낭비했는지, 오늘이 몇 시간이 남았는지 점검할 수 있다. 시간을 돌아봄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시계는 단순한 기계를 넘어 무자비한 자연의 흐름을 인공적이고 지적인 개념으로 바꿔준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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