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르세라핌 | LE SSERAFIM | 욜로 | YOLO | MZ세대 | 불안 | 두려움

RayShines 2022. 10. 2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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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세라핌의 "I'm fearless"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을 살아나가야만 하는 우리들이 정말 갖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m fearless의 애너그램

전 아이돌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관심이 없으니 잘 모르고, 잘 모르니 관심이 없어집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악순환이고, 제 개인적으로는 선순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르세라핌이라는 걸그룹에 대해서 알게 됐고, 처음에는 천사를 의미하는 세라핀(serafin)인 줄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LE SSERAFIM이라는 그룹명이 “I’m fearless”의 애너그램(anagram)이라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관심이 생겼습니다. 애너그램은 영화화된 소설인 다빈치 코드의 주요 주제가 되기도 했던 용어로 단어의 철자 순서를 바꾸어 새로운 단어 조합을 만들어내는 행위 혹은 그렇게 만든 단어를 말합니다. “O, Draconian devil”은 “Leonardo da Vinci”의 애너그램이고, “Oh, lame saint”은 “The Mona Lisa”의 애너그램입니다. 애너그램 자체야 이제 낡은 개념이지만 그 재료가 된 문장이 “I’m fearless”라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관심을 끌었습니다.

 

MZ세대와 베이비붐 세대

밀레니얼 세대(Millenial generation), 우리 말로는 밀레니엄 세대는 1980년대 초에서 2000년 사이에 출생한 이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Z세대는 1995년에서 2010년 사이에 태어난 인구를 말합니다. 이들은 인터넷이나 SNS가 없는 세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최초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 일컬어집니다. 그리고 밀레니엄 세대와 Z세대를 합쳐서 MZ세대라고 칭합니다. MZ세대는 미국 인구의 43%, 전 세계 인구의 49%를 차지할 정도로 그 숫자가 많습니다. 

요새는 알파 세대까지 나누는 것 같습니다. 알파 세대는 MZ세대의 뒤를 잇는 세대로 2010년 초반부터 2020년대 중반에 태어난 이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유아 시절부터 디지털 기기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한 최초의 세대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말보다 디지털 기기 사용을 먼저 배운 세대라고까지 합니다. 어찌 보면 알파 세대가 진정한 디지털 네이티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과는 대비되는 세대가 있습니다. 바로 베이비붐 세대라고 불리는 세대로 영어로는 부머(boomer) 세대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미국에서는 1946년에서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붐 세대라고 하며 2차 세계대전 끝난 이후 귀환용사들이 결혼하여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베이비붐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의 특징은 미국 역사 상 가장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 그리고 청년기에 유례없는 경제적 풍요를 경험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는 1955년부터 1974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전쟁 이후, 즉 전후세대라는 특징을 가집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청년기에 경제적 풍요 대신 정치적 혼란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세대 간의 격차

Z세대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인구가 1995년 생이라면 현재 스물일곱 살 정도일 것이므로 이들 중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부를 일구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밀레니엄 세대는 미국 전체 부의 4.6%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밀레니엄 세대의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와 그들의 조부모들은 미국 전체 부의 53.2%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더 오래 살았고 그만큼 더 많은 부를 축적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현재의 밀레니엄 세대와 같은 연배일 때도 밀레니엄 세대들에 비해 22%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밀레니엄 세대는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적은 부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MZ세대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막막함, 두려움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MZ세대들의 불안감

항상 세상은 살기 어렵지만 지금은 특별히 더 살기 어려운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을 척박하게 만드는 이슈들이 많습니다. 양극화, PC, 세대 간의 분열, 성별 사이의 갈등, 코로나, 그리고 최근 발생하고 있는 국제 경제의 긴장 등은 세상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원래 혼돈입니다. 개인이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굴러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불변하는 어떤 진리를 찾고 싶어 하고 그중 하나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명제가 아닌가 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면 나도 차도 사고, 집도 살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 조망과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신뢰가 있어야 젊은 세대들이 현재의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MZ세대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과연 그럴까요.

어느 정도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갖춘 이들에게 세상은 한 편의 연극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넷플릭스의 워키즘, 디즈니의 PC, 코인으로 수백억 원의 돈을 번 영앤리치, 인스타그램 속의 미남미녀들은 기성세대들에게는 트렌드일지는 몰라도 피부로 와닿는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자신조차도 이런 이슈들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제 삶이 이로 인해 직접적으로 달라지는 경험을 해본 적은 많지 않습니다. 마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처럼 저와는 잘 절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을 사는 20대들은 이것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차별을 폐지하기 위해 역차별이 발생하는 것, 소수를 존중하기 위해서 다수가 희생하는 것이 무조건 좋게만 보이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심스럽지만 듭니다. 이제껏 믿어왔던 가치가 전복되는 것은 개인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런 방향을 따라가면 최소한 이렇게 되겠다는 어느 정도의 예상조차도 불가능하면 노력 자체의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기존의 가치들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부당한 면들이 많이 있었고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꾸는 방법은 매우 급진적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그런 급진적인 접근이 세상을 배틀그라운드, 그 유명한 온라인 게임처럼 만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성세대들에게는 세상이 연극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제 세상에 뛰어들어서 살아나가야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세상이 전장으로 보일 것 같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욜로 You Only Live Once

욜로는 전장에 떨궈진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연료로 타오른 캠프파이어였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한 번만 산다는 명제는 참으로 명료합니다. 한 번 사는 인생, 뭐 있어라는 말은 저도 가끔 하는 말입니다. 인생 뭐 특별한 게 있겠나, 그냥 즐기면서 살라는 명령은 달콤합니다. 하지만 정작 욜로로 이득을 본 것은 기성세대들이 아니었을까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함, 아무리 노력해도 내 몸 뉘일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유동성의 쓰나미에 올라타 거부가 된 또래들을 보며 느끼는 박탈감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올 방법 중 하나가 어렵고 복잡한 현실은 잊고 즐겁게 사는 게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아이돌은 현실을 소비하기에 아주 좋은 매체 중 하나입니다.

 

아이돌의 서사

아이돌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이제 아주 당연한 일 같습니다. 그리고 한때는 아이돌의 백그라운드에 초자연적, 초현실적인 기믹과 내러티브를 깔아 두는 것이 유행인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그런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이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이지요.

그런데 르세라핌의 코어가 “I’m fearless.“라는 당당한 선언이라는 것이 저에게 굉장히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몇 번이나 새롭게 데뷔를 시도하는 멤버와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무엇인가를 뒤로 하고 미지의 세계로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멤버의 모습이 뭔가 뭉클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아이돌로 데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희생과 노력을 대가로 한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련,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 하나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실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극단적 불확실성이 주는 공포감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재능이 있고,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고, 어리고 젊어서 세상 물정을 모르기 때문에 베팅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자기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거는 게임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공하지 못하면 그간의 노력이 말 그대로 물거품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돌로 데뷔를 한 이들은 누구나 각자의 서사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현실적인 장벽을 뚫고 데뷔라는 기착지점에 도달한 이들에게 현실적인 능력이 아니라 우주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하네요.

 

 

누구나 두렵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르세라핌이 택한 모토인 “I’m fearless.”는 난 두렵지만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절박함과 동시에 난 내 불안함을 불쏘시개 삼아 현실을 태워버리는 대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단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아마 멤버들의 개인적인 내러티브들도 더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말하고 싶지만 쉽사리 꺼내놓을 수 없는 말 두 가지가 “난 두려워,” (하지만) “난 두렵지 않아(,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난 나아갈 거야)”가 아닐까요.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사는 것이 두렵고, 그 무자비함에 소름이 끼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난 두렵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제가 바라는 제 자신의 모습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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