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알고리듬이 된 인터넷 커뮤니티

RayShines 2022. 3. 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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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듬(algorithm)은 입력 자극을 넣었을 때 출력 결과를 산출해내는 모든 종류의 메커니즘을 지칭하는 말이다. 입력, 계산, 출력을 수행하지만,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메커니즘을 블랙박스라고 한다. 우리의 감정과 행동도 하나의 알고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자극이 주어지면 그 결과 감정이 산출되고, 그 감정이 다시 하나의 자극이 되어 행동이라는 결과를 산출해낸다. 그러나 뇌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결과가 나오는지 아직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블랙박스라고 할 수 있다. 

 

 

알고리듬은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우리 뇌에 인스톨된다. DNA에 코딩된 정보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질, 살면서 학습되는 지식과 경험, 교조적으로 전달되는 종교 등 다양한 형태의 알고리듬이 우리에게 탑재되어 있고, 이 여러 가지 알고리듬이 순열을 이루며 새로운 하나의 알고리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의 뇌는 일종의 블랙박스이다. 한시도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계속하고 있고 그 결과를 여러 가지 형태로 내어놓는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나 행동이 발생한 연후에 그것에 대해 말로써 설명할 수는 있지만, 감정과 행동이 막 일어나려고 할 때에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극단적인 혹자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없을지도 모르며, 우리는 뇌가 시키는 명령을 수행한 뒤 사후 합리화를 통해 그것을 설명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것이 거짓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 스스로 나답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수천수만 번의 반복 수행을 거친 블랙박스가 내어놓는 결과들이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서로 크게 모순되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정합적인 느낌이 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일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이것이 나다”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고리듬을 아웃 소싱하기도 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염두에 두고 있는 직장이 좋은 곳인지 선배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게시판 역시 그렇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거나, 감정적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우리는 게시판에 질문을 올린 뒤 답을 기다린다. 좋은 답변을 구할 수 있을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다른 외부 알고리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친구, 지인들의 알고리듬과 게시판이라는 형태의 알고리듬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게시판의 경우 뚜렷한 성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정 게시판에는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암묵적인 규칙과 불문율 같은 것이 생긴다. 해서는 안 되는 말들, 어겨서는 안 되는 규칙들이 오랜 기간을 거치며 쌓여간다. 그것이 싫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커뮤니티를 찾지 않게 된다. 의견이 하나밖에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의견에 트렌드가 생기게 된다. 사조라고 할 것까지는 없으나, 누군가 그 트렌드를 너무 거스르면 공격과 비난을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반향실 효과 (echo chamber effect)가 발생한다. 구성원의 생각이 비슷한 공동체일수록 반대 의견을 수용하기 어려워한다고 한다. 이런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누군가 자신의 의견에 동의만 해주어도 의심이나 숙고 없이 자신의 견해를 긍정하게 된다고 한다. 사실 이것이 인터넷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동조를 얻을 가능성이 높은 커뮤니티에서 동의를 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무리 없이 긍정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한 성향으로 치우친 커뮤니티에 자신의 중요한 결정을 위탁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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