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술에 취해 실수한 신화의 인물들과 디오니소스

RayShines 2022. 3. 1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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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술에 취해 실수한 신화의 인물들

그리스 신화를 읽다 보면 술에 취해 실수를 하는 인물을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신화를 역사적 기록이라고 받아들여선 안 되겠지만, 신화가 당시의 시대상을 부분적으로 반영하는 알레고리임을 인정한다면 아주 오래전에도 술에 취해 실수를 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알코올을 함유한 최초의 음료의 증거는 석기시대의 맥주잔으로 약 10000년 전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5000년 전 이집트에서 오시리스는 와인의 신으로 숭배되었다고 하니 이때부터 와인이 생기지 않았을까 한다. 최초의 맥주 역시 고대 이집트에서 제조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며, 와인과 함께 신에게 받쳐졌다고 한다.
고대 문명에서 알코올 음료는 물 대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추측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물은 세균으로 오염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알코올을 적당히 함유하고 있어야 더 깨끗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맥주나 와인보다 훨씬 알코올 함량이 낮았고, 많은 양을 마셔도 안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고대 서양 문화권에서는 취하도록 마시는 것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신화 속의 인물들도 술에 취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라이오스 왕이다. 라이오스 왕은 우리가 잘 아는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이다. 라이오스 왕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아내 이오카스테와의 동침을 피하고 있었으나, 술에 취한 채 아내와 동침하고 아들 오이디푸스를 낳는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아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키프로스의 왕 키뉘라스에게는 스뮈르나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는 딸의 아름다움을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비교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다. 이를 노여워한 아프로디테는 에로스를 시켜 스뮈느라가 그게 누구이든 처음 보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도록 한다. 스뮈느라는 처음 본 남자인 아버지와 사랑에 빠지고, 아프로디테의 축제날에 술에 취한 아버지와 잠자리를 하고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다.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 중 한 명인 헤라클레스도 술에 취해 실수를 한 내용이 있다. 그는 이피토스라는 청년을 초대해 술잔치를 벌이다가 술에 취해 그를 성벽 아래로 내던져 죽이고 만다.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그 죄를 씻기 위해 옴팔로스 왕국의 여왕 옴팔레의 종살이를 하게 된다. 
술에 취해 큰 실수를 한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신화에서 반복된다는 것은 주취를 대하는 그리스 문화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술에 취해 한 행동의 결과가 매우 파국적인 경우도 있다는 것 역시 취하지 말라는 엄한 명령이 아닐까 생각한다.

 

2. 주신 디오니소스

알다시피 그리스 신화에서 술의 신은 디오니소스이다. 니체는 문화를 아폴론 문화와 디오니소스 문화로 나누었다. 디오니소스 문화는 감각적이고 본능적이며 비합리적인 동시에 혼란스럽다. 이는 서양 문화에서 바라보는 디오니소스에 대한 시각을 말해주는 것 같다. 반면 아폴론 문화는 성찰적이고, 자기 검열적이며, 합리적, 논리적이다. 
그런데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화를 보면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수준이 아니라 참혹한 드라마이다. 장님이었던 테이레시아스는 미래를 예언하며 예언자로서 명성을 드높이는데, 테베의 왕 펜테우스는 그를 조롱한다. 테이레시아스는 펜테우스에게 한 가지 예언을 한다. 바로 디오니소스를 섬기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펜테우스는 그를 잡아오라고 하지만, 군사들은 그를 데려오지 못한다. 펜테우스는 직접 디오니소스의 신도들이 모여있는 키타이론 산으로 간다. 그런데 광란에 빠진 펜테우스의 어머니 아가베가 자신의 아들도 알아보지 못한 채 지팡이로 그를 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가베의 자매, 그러니까 펜테우스의 이모들이었던 아우토노에와 이노가 그의 양팔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아가베는 펜테우스의 머리를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 후 광란에 빠진 무리들은 그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놓았다고 한다. 광란에 빠진 디오니소스의 여신도들을 마에나드(Maenad)라고 부르는데 이는 광포한 여자들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혹은 그녀들을 바칸테스(Baccantes)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시사점 중 하나는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자들에 의해 디오니소스를 부정하는 자들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취한 자들에 의해 명료한 자들이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뜻인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매우 이중적인 신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쾌락을 선사하고 관용적인 면을 가진 동시에 흉폭하고 잔혹한 면도 가지고 있다. 술처럼 말이다. 그를 추종하는 마에나드들에게는 자비롭고 아름다운 신이다. 그러나 그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그는 악마적 면모를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3. 명료한 생각의 중요성

알코올은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열대 지방의 과일 표면에는 이스트가 자랐고, 이 이스트는 과일의 과당을 에너지원으로 혐기성 발효를 하여 에탄올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잘 익은 과일에서는 알코올 향과 달콤한 향이 난다. 적당한 양의 알코올을 마시면 삶이 풍요로워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좋은 영향만 주는 알코올의 양의 경계를 우리는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 
잊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하면 멀리 있는 고민들은 사라지고 눈앞에 있는 것들만 보인다. 그 반대이기도 하다. 눈앞의 괴로움이 사라지고 잡히지 않는 즐거움들에만 집착하게 된다. 어느 경우든 술은 우리의 초점을 흐린다. 
무엇인가를 명료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주의력과 집중력은 희소한 자원이고 쉽게 고갈된다. 그런데 술을 마시는 것은 의도적으로 주의력과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려는 행위이다. 디오니소스가 언제 폭군으로 변할지 그 경계선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그의 신전에서 나와 아폴론을 따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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