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삼위일체의 뇌, 삼부뇌는 사실일까요? | 프로이트 | 프로이드 | 이드 Id | 자아 Ego | 폴 맥클레인 Paul MacLean | Triune Brain

RayShines 2023. 2. 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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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의 뇌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의 뇌가 파충류의 뇌, 구포유류의 뇌(변연계), 신포유류의 뇌(신피질)로 나뉜다는 개념입니다. 

 

삼위일체의 뇌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순차적으로 새로운 층이 덧입혀지며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삼위일체의 뇌는 진화신경해부학자이자 국립정신건강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었던 폴 맥클레인 Paul MacLean 이 주장한 개념입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세 개의 하부뇌로 나뉘어 있으며, 진화를 하며 파충류의 뇌, 변연계, 신피질의 순서로 발생했는데 새로운 뇌가 생겨날 때 예전의 뇌의 기능에 덮어쓰기 overwrite 한 것이 아니라 계층화된 업그레이드 layered upgrade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존의 기능도 그대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조금 더 새롭고 세련된 기능들이 추가되었다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컴퓨터를 쓰며 과거의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할 때 과거의 레지스트리들이 깡그리 삭제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순차적 형성 이론은 루드비히 에딩거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개념은 루드비히 에딩거 Ludwig Edinger 에 의해 먼저 제안되었습니다. 에딩거는 여러 척추동물들 사이에 후뇌와 중뇌는 매우 유사하지만, 전뇌는 어류에서 포유류로 진행함에 따라 그 구조가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에딩거는 양서류로부터 파충류가 분기하고, 파충류로부터 포유류가 분기하는 동안 전뇌에 새로운 층이 한 겹(layer)씩 새로 생겼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그런 업그레이드의 최종판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설명에서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 위에 변연계가, 변연계 위에 신피질이 쌓여 올라간 구조라는 것이지요.

 

에딩거가 쌓아둔 토대 위에 맥클레인은 삼위일체의 뇌라는 개념을 쌓아 올립니다. 맥클레인은 스트레스와 불안이 어떻게 신체적 장애의 원인이 되는지 밝혀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피질에서 일어나는 정신 상태가 그 아래에 존재하는 구조들의 생리 기능 조절을 방해해서 그런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신피질은 시상하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반면, 구피질은 시상하부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구피질을 더 연구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에딩거의 이론을 따라 파충류의 뇌, 변연계, 신피질이라는 개념을 고안하고 여기에 삼위일체의 뇌, 삼부뇌, triune brain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파충류의 뇌는 먹고 싸우고 교미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를 담당합니다. 변연계는 감정을 담당합니다. 신피질은 이성적 사고의 근원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삼위일체의 뇌의 개념은 매우 큰 신피질을 가진 인간의 이성과 지적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근거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유독 뇌가 큽니다. 몸집에 비례하여 예상되는 평균 크기의 7배에 달하니까요. 그리고 원시적인 뇌에서 보다 정교한 뇌로 순차적인 진보를 해왔다는 것 역시 인간이 인간 스스로에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트로피를 수여하기 딱 좋은 설명이었습니다. 저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은 1977년에 출간한 <에덴의 용 The Dragons of Eden>에서 삼위일체의 뇌라는 개념을 대중들에게 알렸고, 칼 세이건의 지원 사격을 받은 삼위일체의 뇌는 상식적인 개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화는 개선의 과정이 아닙니다.

하지만 진화에는 목적이 없으며, 진화의 과정은 개선이 아닙니다. 한 단계 더 진화했다는 것은 전 단계보다 진보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 단계보다 국지적 상황에 더 잘 적응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진화는 끝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 생명체가 보이는 국소적 대등이지 더 완전무결한 존재를 향한 판올림의 과정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인간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을 할 때 늘 과학적인 기준만을 가지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윤리, 종교 등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중요한 코드들이 인간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니까요.

 

 

삼위일체의 뇌는 더 이상 과학적인 사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삼위일체의 뇌는 과학적인 사실일까요?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증거들이 많습니다. 일단 신피질과 유사한 기관이 파충류와 조류에서도 발견되며 에딩거의 이론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학자들은 다른 두 종의 동물의 뉴런들이 매우 달라 보일 수 있지만 같은 유전자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이것은 신경세포들의 동일한 진화적 기원을 가진다는 가설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동작을 감지하고 촉각을 생성해 내는 일차 체성 감각 피질이라는 영역이 사람에게는 4개의 영역에 나뉘어 있지만, 쥐에게는 1개 영역뿐입니다. 지금과 같은 분자생물학적 도구가 없던 시절에 현미경만 가지고 사람과 쥐의 뇌를 비교했다면 연구자는 쥐에게는 없는 3개의 영역이 인간에게만 있고, 그 3개의 영역의 인간에게서만 새로 진화한 것이라고 결론 내리기 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4개 영역에 있는 유전자들이 쥐의 1개 영역에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유추하자면 아주 오래전 인간과 쥐의 공통 선조는 단 1개의 일차 체성 감각 피질을 갖고 있었을 것이나, 어느 지점의 분기 이후에는 우리 선조들의 뇌와 몸이 더 커짐에 따라 하나의 영역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4개의 영역이 분업을 하는 식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에 새로운 부분이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인간의 뇌에 새로운 부분이란 없다는 것이 현재의 의견입니다. 우리의 뇌는 층층이 쌓이면서 업그레이드된 기기가 아니라 하나의 기원에서 다르게 진화한 병렬 상의 모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우리 뇌에 있는 뉴런들은 다른 포유류에도 있으며, 다른 척추동물들에도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완전히 분업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의 뇌는 아이폰 생산 공장처럼 깔끔하게 분업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변연계에서만 감정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변연계는 감정만 전담하지 않습니다. 감정의 많은 부분이 변연계의 일부인 편도에서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감정 발생 시에 파충류의 뇌인 뇌간에서도 활동이 관찰되고, 신피질에서도 신경 활동을 보입니다. 또한 변연계의 일부인 해마는 기억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는 인지기능에 속하므로 신피질의 기능이라고 보는 것이 삼위일체의 뇌의 시각에는 더 부합합니다.

 

 

프로이트의 이드 id 는 삼위일체의 뇌 중 변연계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플라톤은 이간 본성을 말 두 마리가 끄는 전차를 모든 마부에 비유했습니다. 한 마리는 충동과 격정을, 다른 한 마리는 이성과 논리를 의미합니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여러 가지 추동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플라톤뿐 아닙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무의식이 있다는 개념을 대중적으로 만들었지만 사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프로이트에 앞서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칸트의 주체 역시 내적으로 분열되며, 의무를 위해 자신의 성향을 억누르기 위해 고통을 받습니다.

 

프로이트가 주창한 이드(id)의 개념은 맥클레인의 변연계와 깔끔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변연계를 이드의, 신피질을 자아(ego)의 소재지로 결정하면 많은 것들을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뇌는 우리가 뇌를 더 이해하기 편하게 해주는 면이 있으며, 완전히 의미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욕망과 충동, 감정을 인지적인 힘으로 조절하려는 시도와 방법들이 대중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삼위일체의 뇌를 모른다고 해도, 그리고 안다고 해도 정말 우리의 뇌가 어떻게 발생했고 진화했고 현재의 이르렀는지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와중에 가설을 제기되고 폐기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니까요.

 

 

참고 자료 : 사랑을 위한 과학(토머스 루이스, 패리 애미니), 도덕적 동물(로버트 라이트),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조지프 르 두),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존 카치오포, 윌리엄 패트릭),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리사 펠드먼 베럿), 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브루스 후드), The Brain Is Adaptive Not Triune: How the Brain Responds to Threat, Challenge, and Change(Patrick R. Steffen, Dawson Hedges and Rebekka Matheson), 피로사회(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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