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정신장애의 창발성 | 이원론 Dualism 창발성 Emergence | 하드 사이언스 기초 과학 Hard Science | 정신병 | 정신질환 | 원인

RayShines 2023. 3.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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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식이 어떻게 뉴런에서 생겨나는지 아직은 잘 모릅니다. 같은 논리로 정신장애 역시 뉴런에 어떤 오작동이 있을 때 생겨나는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드 사이언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논리학이나 수학, 통계학 같은 형식과학과 물리학, 화학, 천문학,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을 통틀어서 하드 사이언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회과학과 그 외의 과학들은 소프트 사이언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드 사이언스는 가설 수립, 통제 가능한 상황에서의 실험, 수학적 도구를 통한 정량화, 정확성과 객관성의 확보, 동료 평가, 논문 출판, 학계의 공감대 형성, 재현성 등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세포분자생물학은 하드한 사이언스일 것입니다. 신경세포인 개별 뉴런들의 활동 전위를 측정하는 것 역시 하드한 사이언스에 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뉴런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한 인간의 행동이나 감정, 심리 등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들은 하드 사이언스라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형식과학과 자연과학 같은 기초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은 매우 엄밀하고 엄격합니다.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동료들의 리뷰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다른 실험실에서 재현되지 못하면 과학적 사실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매우 더디게 발전해 나갑니다.

 

정신, 감정, 생각 등이 뇌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제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합니다.

마음이 아프다고 할 때 물리적으로 가슴이 답답하다고 표현하고 가슴을 치기도 하여 가슴에 마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의 인지적, 감정적 기능이 뇌에서 비롯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뇌는 신경세포인 뉴런들의 뭉치입니다. 그리고 신경과학자, 뇌과학자들은 개별 뉴런이 흥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부분적으로나마 알고 있습니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신경세포 안과 밖의 전위차가 발생하며 전기신호가 흘러가는지, 그리고 그것이 시냅스라는 간극을 가로질러 어떤 식으로 다음 뉴런으로 릴레이 되는지 상당히 많은 부분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수백 억 개나 되는 개별 뉴런들의 활동의 총합이 우리의 의식, 감정, 생각으로 변화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과학자와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의식, 정신이라는 개념은 늘 수수께끼였습니다. 그것들이 뇌에서 비롯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에도 개별적인 세포들의 활동이 어떤 경로를 거쳤을 때 의식이 되느냐에 대한 탐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라는 데 생각이 닿자 두 가지 해결책이 생겨났습니다.

 

 

 

정신과 의식의 발생에 대해 설명하는 한 가지 방식은 이원론입니다.

첫 번째는 이원론입니다. 이원론은 요새 나온 말은 아닙니다. 데카르트에서 비롯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으며,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다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몸과 마음, 증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며 영혼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뇌라는 기계에서 어떻게 영혼이 발생하는지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애당초 둘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었고, 뇌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영혼만으로는 물리적 특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두 가지가 공존해야만 합니다.

 

 

 

또한 창발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창발 emergence입니다. 창발은 개별 요소들의 활동의 합으로 인해 더 큰 무엇인가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800억 개의 뉴런들이 모여서 전기적, 화학적 활동을 하고 그것이 합쳐지면 의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일단 그렇다는 것입니다. 도시라는 것은 벽돌과 시멘트에서 창발합니다. 물체는 원자로부터 창발합니다. 물고기 떼의 움직임은 개별 물고기들의 움직임에서 창발합니다.

 

만약 우리의 영혼이 몸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몸의 결과라고 한다면 첫 번째 설명인 이원론은 자연스럽게 폐기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의 설명은 창발성뿐입니다. 여기서 엄청난 간극이 발생합니다.

뉴런과 개별 세포들의 활동을 연구하는 신경과학, 뇌과학, 세포분자생물학 등은 심리학과 행동경제학, 정신의학에 대한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설명이 되기 어렵습니다. 정신장애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정신장애를 갖는 경우 다른 정신장애를 동시에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발생에 여러 가지 복잡한 원인들이 뒤엉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원론적 관점으로 보자면 정신장애는 타락한 영혼의 결과일 것입니다.

이원론적 관점으로 보자면 정신장애에 대한 설명은 매우 간단합니다.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타락으로 규정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정신장애라는 것은 영혼의 문제일 것이고, 영혼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은 타락과 의지박약, 문란, 사악함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창발로 보자면 정신장애도 창발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창발로 보자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정신이 뉴런과 뉴런들이 쏟아내는 신경전달물질, 세포들에서 생산하는 단백질들에서 창발한다면, 정신장애는 그 과정 중의 교란, 오류, 오작동 등으로 인해 창발했다는 논리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신의 창발 원리를 모르듯, 정신장애의 창발 원리를 알리 없습니다. 우리는 도파민이 보상과 쾌락에 관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운동에도 관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중독 물질들이 도파민의 분비를 유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파킨슨병이 생긴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 환청이나 망상 등의 증상에 쓰이는 약이 도파민을 차단하는 약물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현병의 원인으로 도파민 과잉 가설이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세로토닌이 우리의 마음을 평안케 하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세로토닌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병이고, 그래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복용하면 우울증상이 호전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약물의 효과가 나오는데 수 주가 걸리는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우리는 세포 수준에서의 움직임은 아주 조금이라도 알고 있지만 그 최종 결과물인 정신, 의식, 정신병 증상 등이 나오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단계와 변수들이 개입하고 있으며 그 중 어떤 단계에서 설명할 수 없는 비약이 일어나는 것인지 전혀 모릅니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조작하는 약물로 정신장애가 일부 치료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약물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음을 의미합니다.

 

 

 

기초와 실제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습니다.

기초과학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들이 실질적인 치료법으로 연결되는 데까지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듭니다. 그뿐 아니라 엄청난 괴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자의 구조를 안다고 해서 당구를 잘 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셈을 조금 한다고 해서 주식 시장을 예측할 수 없듯이 기초와 실제 사이에는 창발이나 이원론으로밖에 건너뛸 수 없는 넓고 깊은 강이 놓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아냈고,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찾아냈다는 것이 마냥 기쁜 소식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과학적 진보는 반겨야 할 일이지만, 유전자 하나가 복잡한 질병의 발병에 관여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전자를 통째로 교체하거나, 그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을 모두 불활성화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의 정신과 의식은 아직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 교란으로 발생하는 정신장애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만약 좋은 치료법이 개발된다면 그 근거가 되는 과학적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그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누가 그것을 비난할까요. 

참고자료 : 뇌 과학의 모든 역사(매튜 코브), 더 브레인(데이빗 이글먼), 사이코패스 뇌과학자(제임스 팰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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