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거짓 합의 False Consensus 란? |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efault Mode Network | DMN

RayShines 2023. 2.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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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합의 - false consensus -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이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입각해 추론한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의견이나 믿음이 타인들의 그것을 대변한다고 착각하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PFC)은 고차원적 인지기능을 담당합니다.

인간에게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PFC)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위는 뇌의 앞쪽에 있는 전두엽 중에서도 가장 앞에 있는 부분입니다. 즉 우리의 이마에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부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전두엽은 언어, 추상적 사고, 정보 이해, 의미 부여, 미래에 대한 고려 등 다양한 인지적 작업을 수행합니다. 전전두엽은 크게 등쪽 가쪽 전전두엽(Dorsolateral PFC)과 배쪽 안쪽 전전두엽(Ventromedial PFC)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등쪽이라는 것은 머리 꼭대기 쪽을 말하며 배쪽이라는 것은 턱 쪽을 말합니다. 가쪽이라는 것은 정중선을 기준으로 멀어지는 쪽을, 안쪽이라는 것은 정중성에 가까운 쪽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있습니다. 전두엽에는 일차적인 감각영역이 전혀 없기 때문에 뇌 전체에 퍼져 있는 다른 신경섬유들로부터 수입되는 이미 고도로 처리된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등쪽 가쪽 전전두엽은 주로 인지적 통제, 집중, 경험을 조직화, 복합적 정보에 기초를 둔 결정, 작업기억과 삽화기억의 조직화, 감정과 인지의 통합 역할 등을 합니다. 이 부위가 손상되면 실행기능의 상실이 발생하며 건망증이 심해지고, 주의가 산만해지며, 미래를 예상하는 능력과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배쪽 안쪽 전전두엽은 애착,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 자기중심적인 정신활동, 보상가치와 정도를 평가하기, 정서적 정보에 기초를 둔 결정 등에 관여합니다. 이 부위가 손상되면 사회적, 감정적 탈억제가 발생하여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일 수 있고, 충동 조절 능력의 저하, 무감동, 집중력 저하, 자발성 결핍, 무관심, 우울감 등을 보일 수 있습니다.

 

 

배쪽 안쪽 전전두엽은 타인의 마음을 읽는 데 관여합니다.

배쪽 안쪽 전전두엽은 특히 마음의 이론 - theory of mind - 이 존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뇌의 특정 부위가 어떤 특정한 기능을 하나만을 수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뇌의 여러 부위들이 서로 활발하게 연결되며 공조하여 특정 과제를 수행한다는 것이 더 믿을만한 가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마음의 이론이라는 것은 “나는 타인의 정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론을 갖고 있어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가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네가 아는 것을 안다”는 것이지요. 마음의 이론은 우리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들이 남긴 글과 그림에서도 그들의 생각을 읽어 낼 수 있게 합니다. 마음의 이론과 관련하여 프리츠 하이더 Fritz Heider, 매리언 짐멜 Marianne Simmel 의 비디오가 유명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TNmLt7QX8E

 

 


이 비디오에는 삼각형, 원, 사각형 등 기하학적 도형만 등장하지만 사람들은 이 도형들에게도 의도와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주 초기의 인간들이 돌과 바람에게도 의도와 마음을 부여하고 이것이 애니미즘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었던 것도 이런 관점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인간은 자동차의 헤드램프와 그릴을 보고도 얼굴의 패턴을 찾아낸 뒤 디자인이 웃는 것 같다, 사납다, 강렬해 보인다 등 사람에게 쓰는 형용사를 씁니다. 마치 자동차도 감정을 가진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매우 자연스럽게 타인의 마음을 읽습니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상대방의 표정, 말투, 걸음걸이 등을 보고 화가 났구나, 기분이 좋구나 등을 아주 빠르고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혹은 그렇다고 믿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면서 그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이 없으면 이 메커니즘은 작동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매번 상대방의 정신상태에 대한 자신의 추론이 맞는지를 상대방에게 물어볼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오랜 경험을 통해 자신이 갈고닦아온 마음의 이론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신뢰합니다.

 

 

안쪽 전전두엽은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활성화되고,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활성화됩니다.

하지만 사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른 관점을 취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같은 현상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세상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추론하려 할 때 마음의 이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안쪽 전전두엽이 활성화됩니다. 그런데 안쪽 전전두엽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활성화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 뇌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 default mode network(DMN) - 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 뇌의 기본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저 멍하게 있을 때 우리 뇌의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DMN일 때 우리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정처 없이 표표류합니다. 이를 sitmulus-independent thought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관련된 자극이 없이도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주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DMN을 me-network, 즉 나-네트워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바로 안쪽 전전두엽입니다. 등쪽 안쪽 전전두엽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지적 관점과 관련이 있는 반면, 배쪽 안쪽 전전두엽은 자기 이미지의 감정적 중요성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등쪽, 배쪽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는 부위라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우리는 멍하니 있을 때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높은데 이때 주로 활성화되는 분위가 안쪽 전전두엽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짓 합의 false consensus 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배쪽 안쪽 전전두엽이 타인의 마음을 읽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구조가 타인의 마음에 읽으려 할 때도 활성화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기서 거짓 합의 false consensus 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타인의 마음을 추론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합의 consensus 는 이루어진 것이 전혀 없이,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저 사람도 나와 같이 이렇게 생각할 거야라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를 simulation theor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기반으로 타인의 마음을 시뮬레이션해 본다는 의미겠지요.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나와 같은 관념적 이미지가 구축될 수 있음에 합의가 이루어지며 종교, 철학, 신, 돈 등과 같은 상호주관도 가능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이루어내지 못했던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읽을 때 쓸 책이 필요하다면 무엇이 가장 적당할까요, 혹은 무엇이 가장 구하기 쉬운 책일까요. 대부분의 인간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가정을 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교본으로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기 위해 별도의 책을 마음속에 두려면 그 타인이 누구냐에 따라 새로운 책을 새롭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마음을 타인의 마음을 읽는 교본으로 쓰면 정확도는 좀 떨어지더라도 효율성은 극대화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 합의가 불합리하는 것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효율적인 대안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거짓합의는 당연히 오해와 갈등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라면 나와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상대방이 나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이 정책의 영역으로 이어지면 생각이 다른 두 집단 사이에 갈등이 생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상대 진영의 의견은 고려하지 않고 중요한 정책 결정이 내려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의 뇌가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타인의 생각을 추론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을지 몰라도 성숙한 인간이라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늘 하며 자신의 생각을 검증해봐야 합니다.

 

10만 년 전에는 세상이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의 목적은 아마 생존, 번식 등 몇 가지 매우 중요한 것들로 국한되었을 것이고, 집단과 개인의 영달의 상관관계는 현대 사회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기 때문에 개인 간의 이해관계 상충이 지금처럼 첨예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는 나 마음을 기반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도 중대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너무 다릅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실 한 개인이 그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이해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냥 각자 자기 눈앞의 이득에 의해서 행동할 뿐, 그 행동의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마음에 기반하여 읽는 것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고, 상대방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내 마음과 내 생각 자체가 틀릴 가능성이 너무 높아진 것이지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집니다.

거짓 합의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며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조금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나의 생각이 거짓 합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상대방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해와 갈등이 모두 사라지진 않겠지만 작은 마음의 평화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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