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자아 고갈은 사실일까요 | Ego Depletion | 동기의 힘 | Motivation

RayShines 2023. 5. 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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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결정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결정적인 순간에 그 결정에 쓸 에너지를 확보해 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결정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지까지는 결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정해야 할 다른 일들이 쌓여 있으니까요.”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그는 삶에 있어서 자잘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한다고 봤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 것도 비슷한 견지에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뭘 입을까 결정하는 것 자체가 정신적 자원을 소모시키는 불필요한 절차라고 봤던 것이지요.

 

미국의 위대한 심리학자 중 한 명인 윌리엄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습관이 없어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비참하다. 이런 사람에게는 (…) 매일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정하고, 무슨 일이든 시작하는 것 모두 의지력을 발휘해야 하는 숙고의 대상이다. 이런 사람은 완전히 몸에 배어 거의 의식조차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결정하는 데 인생의 절반을 소비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완전히 틀린 이야기 같진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뭘 먹을까, 뭘 입을까, 어떤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까, 매 순간 우리는 사소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특히 하루 종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우리가 사소한 결정을 내리는 횟수를 엄청나게 늘려놓았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하루 평균적으로 받는 알림의 개수는 218개라고 합니다. 이 모든 알림을 쓸어 넘길지, 자세히 들여다볼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은 바우마이스터라는 심리학자입니다.

바우마이스터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일은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에너지의 고갈은 또다시 의지력을 발휘해야 하는 후속 상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봤습니다. 한 조사에서 2시간마다 스마트폰으로 질문을 보내 조사를 한 결과,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 유혹을 뿌리치고, 욕망과 싸우는 데만 하루 평균 3~4시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자아는 고갈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힘들 일을 하면 정신적 자원이 고갈되는 상태, 즉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실험과 연구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 중 일본의 학자인 쓰루코 아라이의 실험이 유명합니다. 아라이는 정신노동이 인간의 능률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에드워드 손다이크의 대학원생으로 수학하던 당시 자기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녀는 네 자릿수 곱셈을 하는 과제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실험을 했는데,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나흘 연속으로 곱셈을 하며 그 12시간 동안에는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2~3초 동안만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나흘이 지났을 때 문제를 푸는 속도가 4배 정도 느려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자아 고갈이 발생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녀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피로감의 정도와 계산 성적의 변화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에드워드 손다이크는 이 실험을 근거로 인간은 피로해지기는 하나 고갈되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1946년에는 세 명의 대학원생이 아라이의 실험을 재연했습니다. 3명 모두 아라이보다 곱셈을 더 잘했고, 반복되는 계산 과제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도 몇 가지 요령을 고안해 점수를 향상시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아라이의 실험과 약간 달랐던 것은 이들 3명이 모두 아라이가 미리 정한 성적의 기준을 알고 있었고, 이 성적을 넘고자 하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로가 쌓였을 때에도, 다시 말해 자아가 고갈되어 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적절한 동기가 있으면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지요. 인간이 가진 의지의 탱크는 정신적인 노동을 수행한 뒤에도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후속 연구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2010년 83편의 논문을 분석하여 실시한 메타분석에서는 자아 고갈의 효과가 중간 정도로만 믿을 만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2년 뒤에는 이 결과조차 과도한 것이며 실제는 훨씬 더 애매하다는 논문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를 검증하고자 23개 연구실이 참여한 반복 연구가 시행되었고, 23개 연구실 중 3개에서만 자아 고갈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한 곳은 오히려 자아 고갈이 다음 과제에서 성적을 향상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의지가 근력과 같아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다는 것은 매우 직관적으로 와닿는 비유입니다.

그래서 위의 여러 실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아 고갈이라는 말을 믿고 있으며, 피곤하니 잠깐 쉬어야 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그 말을 어느 정도는 믿습니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고 같은 과제를 끊임없이 반복하면 능률이 떨어지게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불필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드는 에너지와 시간을 아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오늘 어떤 티셔츠에 어떤 바지를 입을까 결정하는 대신 매일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그렇게 해서 준비 시간을 단축시키고 그 에너지를 다른 데 쓸 수 있다면 말이지요. 우리가 컴퓨터나 기계를 사용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단순 반복 작업을 우리 스스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일을 컴퓨터에게 시킬 수 있으면 그 시간에 나는 그냥 놀더라도 그게 더 이득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적절한 동기가 있으면 자아 고갈을 잠깐 무시할 수 있다는 말도 어느 정도 사실일 것입니다.

너무나 피곤해서 도저히 뭔가를 더 할 수 없는 한계의 순간에 도달한 것 같다고 하더라도 정말 그 순간을 넘어야만 한다는 강력한 동기가 있으면 조금 더 나아가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번 것을 끝내면 정말 쉴 수 있다든지, 아니면 이번 문제 하나를 더 풀면 큰 상이 기다리고 있다든지 하는 때이지요. 그럴 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한계의 외연은 조금 확장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탈진하는 것도 맞습니다. 이럴 때는 휴식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빨리 나의 자아가 고갈되었다고 생각하고 지레 포기하는 것도 좋지 않을 것이고, 자아 고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자신을 학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자료 :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데이비드 바드르), 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브루스 후드), 크레이빙 마인드(저드슨 브루어), 습관의 알고리즘(러셀 폴드랙), Hagger, M. S, Wood, C., Stiff, C., Ego depletion and the strength model of self-control:A meta-analysis, psychology bulletin 136(4), 49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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