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시점 할인 | 현재 편향 | 지연 할인 | 시간 지연 | Temporal Discounting | 미래 할인 | 스탠포드 마시멜로 실험 | 마쉬멜로우

RayShines 2023. 6. 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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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미래보다 현재의 가치를 높게 매기는 성향이 있습니다. 미래의 가치를 폄하하는 현상을 시점 할인, 현재 편향, 시간 지연 등 다양한 용어로 부릅니다. 영어로는 temporal discounting 이라고 합니다.

생존이 1차 목표였던 시절의 인간은 눈앞에 있는 자원을 최대한 빨리 소비하는 것이 이득이었을 것입니다. 잘 익은 과일을 그냥 두고 지나가면 산짐승이 모두 따먹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운 좋게 발견한 죽은 사슴의 고기를 최대한 많이 먹어두지 않으면 언제 상할지, 언제 누군가에게 빼앗길지 모를 노릇입니다. 자원을 잘 보관해 두고 나중에 정말 배고플 때나 경쟁이 치열할 때, 혹은 궁할 때 사용하면 그 가치는 현재보다 높겠지만 내가 오늘 죽으면 그런 미래도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미래의 가치는 할인되고, 현재 가치는 과대평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개체가 더 많이 생존했을 것입니다.

 

 

스탠포드 마시멜로 실험에서 오래 기다린 아이들이 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들 합니다.

이와 관련된 아주 대표적인 실험이 월터 미셸의 마시멜로 실험입니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주고는 실험자가 되돌아올 때까지 먹지 말고 기다리게 한 실험이지요. 여기서 자제력을 발휘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던 그 실험입니다. 당장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어치울 때의 가치를 10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어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뒤 먹는 마시멜로의 가치는 지금보다는 낮습니다. 그런데 기다린 아이들의 경우 그 가치를 9 정도라고 본다고 해보죠. 이 경우 미래 가치가 1만큼 할인된 것입니다. 그런데 당장 먹어치운 아이들은 기다린 뒤 먹는 마시멜로의 가치를 5 정도로 봤다고 해보죠. 이 경우 미래 가치는 5만큼 할인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먹는 것이 나중에 먹는 것보다 가치가 5 높죠. 기다릴 이유가 없습니다. 반면 인내심을 발휘한 아이들의 경우 지금 먹으나 나중에 먹으나 그 가치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할인이 상대적으로 적게, 더 정확하게는 느린 속도로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 2만 원과 두 달 후에 3만 원,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어른들에게는 시점에 따라 받는 금전적 보상을 다르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비슷한 실험을 합니다. 지금 2만 원을 받는 것과 두 달 후에 3만 원을 받는 것 중 무엇을 택하겠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지, 다시 말해서 인내심이 얼마나 강한지, 더 정확하게는 미래의 보상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빠르게 할인하는지를 의미하는 숫자를 계산하기도 하고 이를 주로 k로 표현합니다. k가 크면 그만큼 시간의 경과에 따라 빠르게 가치를 할인한다는 의미입니다. 

 

 

 

hard to break
러셀 폴드렉(Russell A. Poldrack)의 습관의 알고리즘(Hard to Break)에 실린 그래프입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실선은 지금 10달러를 받는 것과 비교했을 때 미래의 보상을 기다릴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을 의미합니다. 왼쪽 그래프의 경우 20일 경과 시 12.5달러는 되어야 20일을 기다릴 수 있고, 오른쪽의 경우 11달러 정도만 되어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양쪽 그래프에서 옅은 회색 부분은 기다릴 수 있는 최소 금액보다 미래 보상이 작으므로 즉각적 보상을 취하는 영역이고, 짙은 회색 부분은 기다릴 수 있는 최소 금액보다 미래 보상이 더 크므로 미래의 보상을 기다리는 영역입니다. 다시 말해 왼쪽 그래프의 경우 60일 뒤 15달러를 준다고 하면 그냥 지금 10달러를 받겠지만 25달러를 준다고 하면 60일을 기다립니다. 오른쪽 그래프의 경우 60일 뒤에 12.5달러를 준다고 하면 그냥 지금 10달러는 취하겠지만, 15달러만 준다고 해도 기다립니다. 왼쪽과 오른쪽의 경우 어느 쪽이 미래의 가치를 많이 할인한 것일까요? 왼쪽입니다. 왜냐하면 100일 후의 27.5달러는 현재의 10달러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오른쪽의 경우 100일 후의 15달러는 현재의 10달러와 동일합니다. 왼쪽에서 더 큰 폭으로 할인이 일어났습니다.

 

 

 

개인마다 미래를 할인하는 정도가 1000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실제로 20,000명가량을 대상으로 k를 측정한 결과 최소값과 최대값의 차이가 1000배 정도 났다고 합니다. 최대치의 인내심을 보인 사람은 30일을 기다려 20.1달러를 받는 것을 택했고, 가장 할인을 많이 한 사람은 지금의 20달러를 포기하고 30일은 기다리기 위해서는 167달러를 요구했습니다. 전자의 경우 0.4975%의 할인, 후자의 경우 94%의 할인이 일어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안느 린느 브레트빌르-옌센(Anne Line bretteville-jensen)의 1999년 연구에 따르면 중독자들과 비중독자들은 미래 가치 할인 정도에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녀는 각 그룹에 100,000 노르웨이 크로네짜리 복권에 당첨됐으며 지금 당첨금을 수령하면 조금 적게 받아야 하고, 1주일을 기다리면 전액 모두 수령해갈 수 있으니 선택하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여기서 중독자들의 20%가 적더라도 지금 당장 돈을 받겠다고 했으며, 과거 중독자의 경우 4%, 비중독자의 경우 2% 정도만 그 손실을 감수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의 유명한 실험은 워런 K. 비클(Warren K. Bickel)의 연구로 중독자들과 대조군에게 “아침에 일어난 뒤, 빌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미래란…(After awakening, Bill began to think about his future. In general, he expected to…)”이라는 질문을 던진 연구입니다. 그 결과 대조군에게 막연한 미래란 평균 4.7년 후였으나, 중독자들의 경우 9일 후에 불과했습니다. 중독자들의 경우 미래에 대한 조망 자체가 박탈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미래 가치를 많이 빠르게 할인하는 이들, 즉 가속 미래 할인을 하는 사람에게는 즉각적 보상 외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그것이 무엇이라도 하더라도 미래의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현재의 것만이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지요.

 

 

 

 

위의 연구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중독자들이 미래를 많이 할인합니다.

중독이란 어떻게 보면 본질적으로 단지 미래의 사건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더 큰 장기적 보상을 평가절하하고, 즉각적 만족을 주는 단기적인 동시에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할인율을 중독의 마커로 삼으려 했던 연구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의 연구에서 봤듯이 사람마다 할인율이 1000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 그리고 미래에 대한 할인 성향을 시간이 지나도 개인마다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보이는 모든 특질들이 그렇듯이 현재에 편향되어 있는 정도, 미래를 평가절하하여 할인하는 정도 역시 환경과 유전자가 함께 작용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일 것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유전은 할인율의 집단 내 차이의 50%가량을 설명한다고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환경의 영향 역시 중요할 것입니다. 사회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사는 가난한 집안의 아이는 기다리는 것 자체가 옳은 결정이 아닐 수 있습니다. 기다리면 빼앗길 테니,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시야에 들어오는 즉시 취해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곧 새로운 크레용 세트가 오니 우선 낡은 크레용을 가지고 놀고 있으라고 한 뒤, 한 그룹에는 실제로 새것을 주고 다른 그룹에는 새로운 세트가 떨어졌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이후 이어진 만족 지연 실험에서 후자의 그룹 아이들은 실험자를 신뢰할 수 없다고 여겨 보상을 기다리는 정도가 적어졌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할인하는 것이 중독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사실 할인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는 것인지, 중독자들이 할인을 많이 하는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한 연구를 통해 할인율이 실제로 약물 중독과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할인율은 사람들 간의 중독 성향 차이의 5% 미만만을 설명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인가요?

참고 자료 : 포노 사피엔스(최재붕),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데이빗 바드르), 도파민 네이션(애나 램키), 프렌즈(로빈 던바), 습관의 알고리즘(러셀 폴드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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