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사형 가설 | Execution Hypothesis | 사이코패스 | 소시오패스 | 공격성 | 이누이트 쿤란게타 | 요루바 아란칸

RayShines 2023. 6. 24. 00:00
반응형

사형 가설 execution hypothesis 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집단 구성원들에게 폭력적, 공격적, 착취적인 개인은 집단에서 축출당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낮은 공격성을 보이는 이유에 대한 한 가지 설명입니다.

 

인간 사회의 규모를 고려하면 인간은 공격성을 꽤나 잘 조절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매우 큰 규모의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복잡한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구성원들, 집단 내 소집단 사이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첨예한 대립에 비해 폭력 사건이 그렇게 많이 벌어지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제도권 내에서, 법적인 범주 내에서 해결을 하려는 노력을 하니까요. 누군가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할 생각을 먼저 하지 당사자의 집에 찾아가 물리적 응징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이야 누구나 해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물리적 폭력을 당한다고 해도 우리가 늘 리적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슬픈 일이지만 누구나 물리력을 동원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런 선천적인 조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을 막고자 법이 존재하는 것이겠죠. 다시 말해 인간의 외부에서 불쾌한 반응이 발생한다고 해도 즉각적으로 공격을 하진 않습니다.

 

인간이 왜 다른 동물들에 비해 덜 공격적일까에 대해서 많은 연구자들이 궁금합니다. 인구 1000만 명이 넘게 모여서 사는 도시에서 매일 같이 폭력사건이 벌어지긴 합니다만, 그 규모나 복잡성에 비해서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문명화되지 않은 유인원을 좁은 공간에 꽉 채워놓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서 개체수가 확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유인원으로 알려진 침팬지와 보노보를 보면 그 차이가 명확합니다. 침팬지는 매우 공격적이 반면, 보노보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낮은 공격성에 대한 설명 중 하나가 사형 가설입니다.

왜 인간의 공격성이 높지 않을까에 대한 가설 한 가지가 사형 가설입니다. 영어로는 execution hypothesis라고 합니다. 범죄자를 사형시키다 할 때의 그 사형입니다.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타인을 공격하는 개체는 사형시킨다, 혹은 생식 기회를 박탈하는 식으로 대응하여 집단 내에는 집단의 규칙에 순응하고,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는 개체만 잔류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집단과 집단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면 당연히 공격적인 개체가 많은 쪽이 승리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쟁의 목표가 반드시 상대 집단의 섬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전쟁이라면 이쪽의 피해도 너무 큽니다. 자원을 두고 벌어진 분쟁에 대한 협상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 물리적 충돌이라면 1차적 목표는 더 많은 자원의 확보일 것입니다. 실제로 1차 충돌 때 너무 큰 피해가 발생하면 2차 충돌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외집단의 구성원에게 매우 공격적인 사람은 내집단의 구성원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격성을 조절하지 못하는 구성원은 전쟁에서 유용하긴 하겠으나, 그 외의 대부분의 시기에는 집단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위험 요소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개체는 집단에서 배제하자는 압력이 발생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시기에나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혹은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있었습니다.

이누이트 족은 이런 사람들을 쿤렌게타라 불렀습니다. 인류학자 제인 머피가 이누이트와 지내며 연구를 했을 때 이누이트 족은 쿤란게타에 대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빙산 꼭대기에서 밀어버리든지”라고 이야기했다고 하지요. 변화시킬 수 없으니 배제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 족에도 비슷한 자들이 있습니다. 요루바 족은 이들을 아란칸이라고 부릅니다. 이 경우에도 이들이 나아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격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공격성을 조절하지 못하는 개체에 대한 집단의 반응이 어땠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인 개체들이 집단에서 지속적으로 제거됨에 따라, 즉 사형 가설에 따라 집단에는 비교적 협력적이고 체제 순응적인 DNA의 비율이 높아졌을 것입니다. 그에 따라 우리의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상호 협력, 규칙 준수 등의 기본적 가치가 유지될 수 있었겠지요.

 

요새 참 험한 뉴스가 많이 들립니다. 사소한 시비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번지는 경우를 보면 인간의 공격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런 소식이 더 뉴스가 되고, 더 많이 회자되기는 하겠으나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폭력의 한계는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자료 : 나, 소시오패스(M. E. 토마스),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리처드 랭엄), 사이코패스 정상의 가면을 쓴 사람들(니카노 노부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