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어려운 환경에서 큰 아이들이 더 빨리 철이 든다? | 가속 성장 | 정신사회적 가속

RayShines 2023. 8. 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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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성숙 속도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서 빠릅니다. 가속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우호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더 빨리 철이 듭니다.

철이 든다고 하니 긍정적인 의미로 들릴 수 있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혹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서 더 빨리 성숙하는 것을 정신사회적 가속 psychosocial acceleration 이라고 합니다.

 

 

 

빠르게 성숙하면 좋지 않을까요?

빨리 성숙하면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늦되는 동물입니다. 그 성숙 속도가 느리기로는 자연계에서 거의 1~2위를 다툴 것입니다. 기린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돌고래를 태어나자마자 수영하는데 인간은 걷는 데에만도 십 수개월이 걸립니다. 아주 극단적인 상황에서라면 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들도 혼자 살려면 살 수 있다고는 하고 15살이 되면 스스로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생존이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신체적으로 독립하는 데만도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 성숙 시간을 단축시켜 준다면 사회적 비용이 줄어드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러나 그렇진 않다고 합니다.

 

 

 

왜 가혹한 환경은 개인의 성숙을 가속화할까요?

가혹한 환경, 즉 예측 불가능한 경제적 상황, 불안정한 양육, 적절한 교육이나 의료 미비, 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왜 더 빨리 자랄까요? 한 가지 설명은 이들이 생물학적 과업을 최대한 빨리 달성하고자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물학적 과업은 아주 간단히 말하면 자손을 남기는 것입니다. 인간의 목적이 자신의 DNA를 후대에 남기는 것이라고 말하면 그 존엄을 해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생물학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많은 후손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로써 현재의 개체들이 존재하는 것이니 영 틀린 말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가혹한 환경에 놓인 개체는 왜 빨리 번식하려고 할까요?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나, 오늘 가진 자원이 내일도 확보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질과 무관하게 최대한 빨리 성숙해서 후손을 남기자는 과제를 해치워버리자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가혹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은 초경도 빠르고, 더 어린 나이에 첫 번째 성관계를 가지게 되며, 성적인 파트너의 숫자도 더 많습니다.

 

빨리 아이를 낳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그것도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고 또 기쁜 일이니까요. 그런데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는 대단히 힘든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 양육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자녀에게 불안정한 양육 환경을 제공하게 될 가능성도 보다 높아질 것입니다.

 

 

 

가혹한 환경은 장기적 조망을 키우기 어렵게 합니다.

그리고 가혹한 환경에서 자라며 삶과 세상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 불신, 예측 불가능성에 과도하게 노출된 이들은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데 인색해집니다. 당연할 것입니다. 10년 동안 노력을 해도 그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심이 더 크다면 누가 노력을 하겠습니까. 내가 한 노력의 50%, 60%, 아니면 내가 한 노력의 200%가 미래에 결실로 돌아온다는 확신, 혹은 착각이 있어야 시간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이건 직업에도 마찬가지이고, 삶을 함께 꾸려나갈 파트너, 아니면 배우자를 찾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충분한 탐색을 거치고, 장기적으로 자원을 투입할 수 있으려면 미래가 어느 정도는 투명하게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미래가 불투명하면 그냥 눈앞에 있는 기회를 닥치는 대로 잡기 쉽습니다. 그것이 불법적인 일이라도 보수가 후하다면 그렇게 될 것이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삶을 살아나간다면 불행한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며,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더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우 느린 속도의 성숙이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시기가 늦어지면 비용은 천정부지로 증가하고, 또 적절한 시기에 경험해야 할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취득하게 될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질 순 있겠지요.

 

가혹한 환경에서의 성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럴 바에야 비용과 시간이 더 들더라도 느린 양육을 하는 편이 낫겠죠. 물론 우리나라처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교에 가고, 또 꽤 많은 숫자가 대학원에 가고, 또 많은 비율이 박사까지 마치는 그런 정도의 속도가 옳다는 것도 아닙니다. 학력과 스펙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그 가치는 떨어지는 시점이 반드시 올 것이고, 차라리 그럴 바에야 시간을 절약해 빨리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 판단이니 누구도 뭐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사랑을 받고 크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빨리 성숙하든 느리게 성숙하든 정체성을 찾기 전의 아이들은 충분한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가혹한 환경이 부족한 사랑과 동의어라면 그것은 반드시 타파해야 할 것입니다. 느린 속도로 성장하는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보탬이 많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것은 느린 속도의 성장이 비교적 안정적 양육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양육자들이 인내심을 갖고 아이들을 지켜봐 줄 수 있고, 또 아이들이 생각하고 탐험하고 실험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양육에 있어 인내와 기다림은 사랑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며,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양육자들이 아이들을 기다려줄 수 있고, 그 여정에서 발생하는 고단함을 참아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고 문헌 : 성격, 탁월한 지능의 발견(존 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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