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우리는 디자인된 것일까요? | 설계되었다는 표현 | 지적 설계 | 창조론 | 진화론 | 데우스 엑스 마키나

RayShines 2023. 10.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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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세포가 이런 식으로 설계되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 행동하도록 설계되었다는 표현을 흔하게 씁니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라도 이런 말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 중 어떤 것을 믿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학서적을 읽다보면 저자들이 생명체나 생명체를 이루는 구조에 대해 “설계되었다”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저자들이 창조론을 믿거나, 혹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사실 과학자들 중 인격화된 신의 존재를 믿는 이들이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에 소속된 과학자들 중 인격화된 신을 믿는 사람은 7%정도라고 하니 아주 높은 비율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국 왕립학회의 경우 무신론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인격신을 믿는 비율은 3.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지적 설계를 믿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끔 우리가 OOO하도록 디자인되었다, 이 세포는 ~~~하도록 설계되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아마도 생명체의 복잡함이나 정교함을 설명함에 있어 이것이 자연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믿기 어려운 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의지와 의도를 가지고, 그리고 라플라스의 악마처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변수를 고려하여 뭔가를 디자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진화론을 고안해낸 찰스 다윈조차도 이런 부분을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눈, 그러니까 안구에 대해서 그는 자연 선택이 점진적 단계를 거쳐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하며 정확하며 내구력 높은 기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터무니 없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고 하네요. 진화라는 과정은 목표도, 의도도, 목적도 없는 것이며, 국소적인 환경에 대한 생명체의 일일시적인 적응과 그런 식으로 선택된 특질의 유전이라는 동력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던 다윈조차도 설마 이 모든 게 진화로 가능했을까하는 의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단순한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인간의 본성 깊이에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고민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봅니다.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나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고,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튀어나와서 도망쳐버리고 싶을 때, 누군가가 “그냥 이렇게 해”라고 결정해줬으면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대학교와 많은 전공들이 있는데 이 많은 것들 중 대체 뭘 선택해야 하는 걸까, 그냥 대학교도 고등학교처럼 뺑뺑이를 돌려서 지역 내에 있는 곳으로 가면 안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순간에 우리는 절대자에 의지하고 싶어집니다. 그냥 정해진 운명, 더 정확히는 어떤 매우 강력한 누군가가 우리 각자를 위해 정해둔 경로를 따라 가고 싶은 마음, 뭔가를 선택하는 데서 오는 갈등을 피하고 싶은 마음, 나의 결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종교나 절대자를 믿는 이유라고 말하며 종교인들의 신념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적 믿음은 이보다는 훨씬 더 숭고한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 속에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에 생명체일수도 있고, 무기체일수도 있으며, 물질적인 것일수도 있고, 추상적인 것일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나의 목적과 내 인생의 목적지는 어디인지 궁금하고 막막합니다. 그걸 나 혼자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두려움도 듭니다.

 

또한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압도적인 그 무엇인가를 만났을 때도 인간은 같은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피라미드처럼 너무나 거대한 것일수도 있고, 인간의 뇌나 안구처럼 너무나 복잡해서 숭고함이나 경외을 뛰어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하는 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연스레 설계나 디자인 같은 용어를 쓰게 되는 게 아닐까요.

 

인간은 매우 강인합니다. 많은 것을 이겨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매우 나약하기도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가진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으며, 시공에 엄격하게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도 자기 의도나 의지대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찾게 되나 봅니다. 우리를 이렇게 설계하고 디자인했다고 믿고 싶은 그런 존재를 말입니다.

 

참고 문헌 :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빌 브라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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