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우리는 침팬지와 보노보 중 어느 쪽과 더 가까울까요? | Bonobo | 피그미 침팬지 Pygmy Chimpanzee | 호미니드 Hominid

RayShines 2023. 11. 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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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와 보노보라는 유인원이 있습니다. 침팬지는 수컷이 암컷을 지배하며 비교적 폭력적인 반면, 보노보는 암컷이 수컷을 지배하며 비교적 덜 폭력적입니다. 더 노골적으로 보노보에 있어서는 에로티시즘이 폭력을 대체했습니다.

 
 
 

인간,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는 유인원인 호미니드 hominid 에서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500~700만 년 전 정도에 호미니드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화석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그 시기에 직립 보행을 하는 유인원이 사바나에 10종 정도 등장했다고 하는데, 그 중 인간만이 생존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숲에서 서식하던 다른 두 종은 우리처럼 살아 남았습니다. 그들이 바로 침팬지와 보노보입니다.
 
 
 

인간, 침팬지, 보노보, 그리고 오랑우탄은 호미니드과에 속합니다.

호미니드는 꼬리가 없고, 가슴이 편평하고, 팔이 길고, 몸집은 크고, 예외적으로 지능이 높다는 특성을 가집니다. 이 중 우리 인간은 특히 침팬지, 그리고 보노보와 유사한데, DNA의 일치 정도가  96~98%, 많게는 98.8%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수치는 사실 문헌마다 많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이 셋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일반 대중들이 오해했듯이 우리가 보노보나 침팬지의 후손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세 종 모두 계통학으로는 한 뿌리에서 나왔으나 각가의 계보에서 다르게 진화했습니다. 호미니드는 유인원이므로 사람 역시 유인원입니다. 아직 사람이 유인원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생물학적인 근거를 제시한 사람은 없다고 하네요.
 
 
 

보노보는 한때 피그미 침팬지, 그러니까 작은 침팬지라고 불렸습니다.

보노보 Bonobo 라는 이름은 콩고의 한 지역인 볼로보 Bolobo 에서 보낸 화물 상자에 오타가 나서 그랬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노보가 보노보로서 확정된 것은 1929년의 일입니다. 그 전에는 보노보와 침팬지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보노보를 피그미 침팬지라고 부르는 문헌들이 종종 있습니다. 피그미가 작다는 뜻임을 고려한다면 보노보를 피그미 침팬지라고 부르는 것은 둘 사이의 덩치 차이를 과장되게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보노보를 단순히 조금 유쾌한 침팬지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침팬지는 폭력으로 유지되는 강력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반면, 보노보는 가모장에 의해 유지되는 박애적인 삶, 더 노골적으로는 섹스로 점철되는 삶을 살기 때문이었습니다. 보노보가 처음 학자들에게 소개된 것은 1881년이었으나 그 후로 거의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침팬지와 같은 종으로 인식됐었습니다.
 
 
 

실제로 보노보와 침팬지는 매우 닮았습니다.

둘 다 검은 머리를 한 유인원이며, 손가락 관절로 걷고, 무게는 30~60% 정도 나갑니다. 둘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보노보의 경우 머리가 침팬지에 비해서 작고, 머리 중앙에 가르마가 있다는 것입니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콩고 강을 경계로 분리된 지역에서 각각 살아가는데, 침팬지는 강의 오른쪽, 보노보는 강의 왼쪽에 삽니다. 사실 보노보를 원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이들은 원숭이가 아닙니다. 보노보는 우리처럼 꼬리가 없는 호미니드입니다.
 
 
 

보노보는 1929년에 독립된 종으로서의 학명을 받았습니다.

1928년 해럴드 쿨리지는 유인원의 두개골을 집어 들고는 그것이 어린 침팬지의 두개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뼈끝이 완전이 융합된 것을 발견합니다. 새끼의 두개골이라면 아직 봉합 suture 의 융합이 끝나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자랄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다른 두개골들을 살펴 보았더니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로 전부 봉합이 닫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미성년 개체의 것인 줄 알았던 그 두개골들이 모두 성장이 완료된 성년 개체의 것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관찰을 통해 침팬지와 해부학적으로는 매우 유사하지만 성년에 이르러서도 두개골이 미성년 침팬지의 그것처럼 비교적 작고 둥근, 완전히 새로운 유인원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보노보를 하나의 완전한 종이라고 결론내렸으며 학명은 Pan paniscus로 정합니다. 이때가 1929년입니다. Pan은 침팬지의 속명이며paniscus라는 말은 pan의 축소격이니, 결국 학명은 작은 침팬지라는 피그미 침팬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침팬지와 보노보 사이 어디쯤에 위치합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침팬지는 매우 폭력적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 속에 폭력이 숨어 있다는 주장하는 이들은 그 예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를 듭니다. 반면 보노보는 애무와 섹스로 갈등을 해결하고,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섹스를 하는 인간 외의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침팬지들이 서로 격렬하게 다투며 한쪽이 한쪽을 죽이거나 고환을 짜내버리는 반면, 보노보들은 서로 할퀴는 정도로 끝납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하고 화합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노보를 그 증거로 꺼냅니다. 그럼 인간의 둘 중 어느 쪽에 더 가깝느냐는 질문이 나올텐데요. 우리는 그 중간 어디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프란스 드 발은 우리가 유전적으로는 침팬지와 보노보의 중간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침팬지와 떨어져 있는만큼 보노보와도 떨어져있으며, 동시에 침팬지와 가까운 만큼 보노보와도 가깝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그 두 가지 성정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우리가 침팬지와 더 가깝다고 설명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공격적이고 위계적이며 갈등이 발생하면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그 파괴적 본능을 제어하기 위해서 법, 제도, 교육, 문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 본성의 착한 천사>에서 스티븐 핑커는 보노보가 완벽하게 평화로운 종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인간은 보노보보다 침팬지를 닮았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보노보는 영장류 치고는 몹시 이상하다”고 하며 “보노보는 별종으로 보는 편이 맞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침팬지나 보노보 중 어느 쪽과 더 가까운지에 대해서 결론 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리처드 랭엄의 말처럼 사악한 동시에 관대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침팬지와 보노보의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일 수 있겠으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더 관대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게 아닐까요.
 
참고 문헌 :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윌리엄 패트릭, 존 카치오포), 차이에 관한 생각(프란스 드 발), 우리 본성의 착한 천사(스티븐 핑커),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리처드 랭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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