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MBTI는 사실일까요? | 본질주의 Essentialism | 나쁜 피 | 악마화 | 신토불이 | 하이포디센트 | 신체발부 수지부모 | 동성동본 금혼법

RayShines 2023. 11. 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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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주의 essentialism 는 보이지 않는 내재적 본질 혹은 힘이 범주 내 구성원의 외형과 행동을 결정한다는 믿음, 즉 어떤 사물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은 근원적 본질 때문이라는 믿음을 말합니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죠.

나의 몸과 내가 태어난 땅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에, 건강하려면 우리는 우리 땅에서 난 우리 농산물을 먹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결정한다는 믿음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우리 농산물에 대한 애국적인 캐치 프레이즈가 유행하기 전에도 말입니다.

 

 

 

우리는 본질, 근원이라는 단어에 끌립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의 뇌는 뭔가에 대한 설명을 찾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것에 대한 원인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몸이 아프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원인을 찾아서 없애면 건강을 되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사정없이 인과관계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전후관계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해하는 오류가 엄청나게 많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밝은 카페에 있을 때 공황발작이 오면, 밝은 카페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밝은 카페를 회피하게 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요. 사물, 사건의 원인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를 가장 간단하게 해결해 주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본질주의입니다. 어떤 일의 발생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는 골치 아픈 해법을 찾는 것보다 그것이 그런 것은 그것이 그것의 본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그 사람의 가문, 인종, 종교 등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체마다 자신을 자신으로 만드는 근원적 본질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 본질이 없으면 더는 그 자신이 아니게 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본질은 자연적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것의 본질은 자연적으로 부여된 것이라는 믿음을 동시에 가지게 됩니다. 즉 본질은 자연스러운 것,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며, 그 본질을 바꾸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오랜 가르침인 신체발부 수지부모 역시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일 덧입니다. 누군가의 본질은 그 사람의 혈통과 가문을 따라 수직적으로 흘러 내려오며, 그것을 부정하거나 훼손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매우 비윤리적이며 반사회적인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것은 불변할 것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됩니다.

이런 주장은 세상의 모든 자연적인 것들이 그러하듯 본질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확장되며, 동시에 대상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쓰일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양반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믿음이 생겨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와 저쪽을 나누는 기준, 피아를 식별하는 장치가 된 본질은 “나쁜 피”라는 개념을 불러왔습니다. 따라서 두 집단이 나뉘어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나면, 승리한 쪽은 반대쪽을 완전히 섬멸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쁜 피”를 가지고 태어난 악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소수라도, 어린이들이라도 남겨두면 그들이 다시 늘어나 같은 문제를 또 일으키리라는 예상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본질주의는 대상을 악마화하는 데 아주 편리하게 이용됩니다. 우리는 선한 본질을 갖고 있고, 적들은 악이라는 본질을 갖고 있으니 선이 악을 응징하는 것은 당위적인 동시에 의무라는 생각까지도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사고방식의 극단이 나치였습니다.

이런 본질주의적 프레임이 극단적으로 작동한 것이 바로 나치겠죠.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동시에 악랄한 선동가였던 괴벨스의 교육을 받은 나치는 박해 대상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자신들을 고결한 아리아인의 본질을 갖고 태어난 선택받은 민족으로 봤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은 열등할 뿐만 아니라 악마로 생각했습니다. 자신들과 그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믿음만 있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작동할 테니까요.

 

 

 

MBTI 역시 본질주의적 사고법입니다.

하지만 본질주의가 홀로코스트 같은 거대한 비극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평가할 때 흔히 본질주의적 개념을 빌려옵니다. MBTI가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에게는 16개의 본질이 존재하며, 어떤 본질이 탑재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이 결정된다는 믿음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요새는 “너 I야?”라고 묻습니다. 그 사람의 본질이 그러하다고 가정하고, 그 사람의 행동은 그 본질에서 나온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믿음이 과하여 누군가의 MBTI를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업무에 적당한지, 그리고 미래에 어떻게 행동할지도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정도에 이르고 있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상황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전부라면 상황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인간 개인의 특성은 증발시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특성(즉 본질), 그리고 그 사람이 놓인 상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맥락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본질을 명확히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모가 우리의 본질인지, 경험이 우리의 본질인지, 우리의 DNA가 우리의 본질인지, 우리의 기억이 본질인지, 우리가 이룬 성취가 우리의 본질인지, 우리가 쌓아 올린 물질이 우리의 본질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질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 본질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본질을 대체할 수 있는 대상물을 찾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DNA입니다.

 

 

 

DNA는 강력한 족쇄로 작용합니다.

DNA가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믿음이 고착화되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고방식을 결정론적 사고라고 부르는데, DNA는 그건 결정론의 최종 보스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DNA로부터 도망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차나드 세게디는 헝가리 반유대 극우 정당인 요비크당 당원이었습니다. 그는 반유대 성향의 글과 설교가 담긴 <나는 헝가리의 부활을 믿는다>라는 제목의 책을 써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전향을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이제 독실한 유대교도가 되어 히브리어를 배우고 유대교 회당에 나갑니다. 이런 급격하고도 엄청난 변화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자신에게 유대인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의 외조모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고, 사망하는 그 순간까지 홀로코스트가 다시 발생할까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2010년에 세게디의 라이벌인 졸탄 암브루스가 세게디의 외조모의 출생증명서를 입수해 세게디에게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세게디는 할머니에게 이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그때까지는 숨기고 있던 과거, 즉 자신의 양부모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처음 세게디는 할머니의 양부모는 자신의 혈연이 아니므로 안심했지만, 증조할머니가 죽은 뒤 외할머니를 맡아 키운 외할머니의 양부모는 외할머니의 외삼촌이었습니다. 즉, 외할머니와 세게디의 DNA는 유대인임이 밝혀진 것이죠. 그리고 그는 유대교도가 됐습니다.

 

이 사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평생을 반유대주의자로 살아왔던 사람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가 해왔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로 인해 쌓여온 그의 평판에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의 DNA에 코딩되어 있는 것일까요.

 

 

 

하이포디센트 (hypodescen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혼혈 아이들이 부모의 인종 중 낮은 쪽의 지위를 물려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1910년에 미국 테네시 주에서는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사람은 흑인으로 봐야 한다는 법이 성문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백인인 미국인이었지만 아버지가 아프리카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흑인이 됐습니다. 오바마의 인종적 본질은 흑인일까요, 백인일까요.

 

지금은 없지만 우리나라에 동성동본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법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김 씨이고 어머니가 이 씨인 사람은 아버지가 김 씨라는 이유로 김 씨와는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 씨임에도 불구하고 이 씨와 결혼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경우 아버지 측의 본질만 중요했던 것일까요.

 

우리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요,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요. 우리는 변화할 수 없는 것일까요.

 

참고 문헌 : 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브루스 후드), 유전자를 우리를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나(스티븐 하이네), 우리 본서의 착한 천사(스티븐 핑커), 평균의 종말(토드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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