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건강을 해치지 않는 음주 방법 | 알코올 | 술의 기원 | 건강하게 술 마시기 | 취한 원숭이 가설 | Drunken Monkey Hypothesis | 술 마시는 이유

RayShines 2023. 11. 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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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그러니까 알코올은 아주 오래된 물질입니다. 알코올이 건강이 나쁘다는 증거는 차고 넘치지만 좋다는 증거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술을 마셔야 한다면 하루 얼마나, 어떻게 마시는 게 그나마 건강에 크게 나쁘지 않은 것일까요.

 

 

 

알코올은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입니다.

인류가 처음 등장한 곳은 아프리카, 그러니까 열대지방이었습니다. 열대지방에서는 과일 표면에서 이스트가 자랍니다. 그리고 이스트는 혐기성 발효 과정을 통해 과일에 들어있는 과당을 에탄올, 즉 알코올로 전환했습니다. 물론 그 결과물로 형성된 알코올의 함량은 매우 미미했지만, 과실 전체에 확산되어 있었고 잘 익은 과일에서 나는 달콤한 향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잘 익은 과일은 훌륭한 에너지원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익은 과일의 알코올 향을 잘 맡는 개체가 생존에 더 유리했을 것입니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잘 익은 과일의 향을 잘 감지하는 선조들의 후손일 것이며, 이것은 우리가 알코올에 끌리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취한 원숭이 가설 drunken monkey hypothesis 이라고 합니다.

 

 

 

우리 뇌의 보상회로도 우리가 술을 찾게 합니다.

이 가설로도 알코올에 대한 인간의 끌림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지만, 왜 어떤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에 이르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보상회로입니다. 아주 오래전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던 선조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 그리고 번식이었을 것입니다.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 번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관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상회로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과 짝짓기를 하는 것에 높은 점수를 매기고 아주 강한 보상을 주었습니다. 인간에게 보상을 매개하는 물질은 아마도 도파민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잘 익은 열매를 찾았을 때 뇌에서 도파민이 쏟아지며 강력한 보상감을 느끼게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메커니즘이 무분별하게 작동하며 알코올에 대해서도 강력한 보상을 제공하고, 그 학습이 알코올에 대한 갈망을 낳았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알코올 역시 뇌에서 도파민을 내놓게 하는 물질 중 하나이니까요.

 

최초의 알코올음료에 대한 증거는 석기시대의 맥주잔이라고 하는데 약 10,000년 전의 유물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와인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제조된 것 같습니다.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5,000년 전에 오시리스가 와인의 신으로 숭배되었음을 고려하면 이집트에서도 이 시기에 와인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도 기원전 5,000년 경에 술을 마셨던 것으로 보이고, 인도에서도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알코올음료를 마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알코올을 짧게 봐도 5,000년은 된 향정신성 약물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문명의 알코올음료는 도수가 매우 낮았습니다. 사실 알코올을 농축하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과일의 과당을 이용해 자연적으로 이스트가 형성할 수 있는 알코올의 농도는 15% 정도가 최대치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상이 되면 자기가 만든 알코올에 이스트가 빠져 사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아무리 높아도 15%, 그러니까 와인 정도가 아마 가장 독한 술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원전 800년 경 중국과 인도에서 증류 기술이 시작되며 이보다 도수가 높은 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술은 인간이 사용하기 시작한 지 수천 년이 넘은 물질입니다. 사실 처음에 알코올음료를 마시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물이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알코올이 있으면 물에 있는 박테리아들을 소독할 수 있었을 테고, 기분까지 어느 정도 좋아지며 갈증도 해소해 주니 금상첨화였겠죠. 그러나 고농도의 알코올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결국 증류라는 기술을 개발하기에 이르게 됐겠죠. 중국과 인도에서 시작된 증류가 유럽에서 보편화된 것은 11세기 이후라고 하는데, 유럽의 증류를 기점으로 계산해도 독주들이 널리 퍼진 것은 1,000년이 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술을 금지하거나 술값을 높게 책정해도 술을 계속 사용되어 왔습니다. 개인이 만들기 너무나 쉬운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술의 유해성과 무관하게 술은 너무나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물질입니다. 그 말인즉슨 대부분의 국가에서 알코올은 합법적인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1917년 미국에서 금주법이 제정되고, 1920년부터 금주령이 시작되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암시장에서 밀주가 성행했죠. 술은 아주 만들어내기 쉬운 물질입니다. 오죽하면 감옥에서도 술을 담가 마십니다.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이 아주 간단하게 술을 만들어내기도 하지요. 이렇게 만들기 쉬운 물질을 불법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비제도권에서 알코올을 제조합니다. 밀주가 성행한 것이지요. 17세기 초중반 아일랜드에서는 주류의 수입세가 너무 비싸서 서민들은 맥아 보리를 증류해 포틴이라는 밀주를 만들어 마셨습니다. 아일랜드 전체가 술독에 빠지자 가톨릭 사제 시어볼드 매튜 신부는 1838년 서약하는 순간부터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겠다는 운동을 펼치는 금주회 Total Absitinence Society 를 창립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술은 불법화하거나 가격을 매우 비싸게 책정한다고 해서 제조나 유통, 판매가 중단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적당한 음주가 건강에 좋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술은 어느 정도나 마셔야 건강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요. 적당한 음주가 심혈관 건강에 좋다는 말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음주는 심혈관 질환에 대한 보호 효과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심혈관이 좋지 않은 사람이 술을 마신다고 해서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낮아지진 않습니다. 와인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이 건강에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알코올에 대사 될 때 활성산소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건강에는 도움이 전혀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적당한 음주를 해서 건강을 지킨다는 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으며, 가능하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게 건강에 더 좋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첫 번째 음주 원칙, 하루 권장량 이상은 마시지 않아야 합니다. 16도 소주로 치면 3잔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셔야 한다면 어떻게 마셔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한 양을 지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하루 알코올 섭취량은 남성의 경우 20g, 여성의 경우 10g입니다. 알코올의 도수는 대부분 부피로 표시되기 때문에 질량으로 표시된 권장량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0도짜리 소주를 기준으로 해보겠습니다. 소주 한 잔은 대략 50ml 정도입니다. 50ml에는 알코올이 10ml의 알코올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알코올의 비중은 대략 0.789입니다. 따라서 10ml의 알코올은 질량으로 7.89g, 대략 8입니다. 하루 20g이라고 하면 소주 2.5잔 정도가 되겠네요. 여성은 이 절반인 1.25잔입니다. 16도 소주라고 하면 남성은 하루 3.2잔, 여성의 경우 1.6잔가량입니다. 생각보다 매우 적은 양이지요. 맥주로 치면 남성은 500ml, 여성은 250ml입니다.

 

 

 

두 번째 음주 원칙, 반드시 식사를 하고 음주해야 합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음식물과 같이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있습니다. 연구진들은 건강한 성인 남성 10명에게 자는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않도록 한 뒤 체중 당 0.8g의 알코올을 섭취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둘로 나누어 한쪽 그룹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음주를 하게 했고, 다른 한쪽 그룹은 치즈 샌드위치 2개, 삶은 달걀, 오렌지 쥬스, 과일 요거트로 아침 식사를 하게 한 뒤 술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의 최고점이 공복 음주 그룹의 경우 104mg/dl(0.104%), 식사 후 음주 그룹에서는 67mg/dl(0.067%)로 35%까지 차이가 났습니다. 그리고 알코올을 대사하는 속도도 아침을 먹은 그룹에서 2시간가량 빨랐습니다. 또한 빈 속에 술을 마시면 15~90분 뒤에 혈중 알코올 농도가 피크에 이릅니다. 그런데 위에 음식물이 있으면 알코올의 흡수가 4~6시간 동안 지연됩니다. 결론적으로 음식물을 충분히 섭취하고 음주를 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의 최고점은 35%가량 낮아지고, 흡수 속도는 4~6시간 동안 느려지며, 대사하는 속도는 2시간가량 빨라집니다. 따라서 술을 마셔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식사를 한 뒤, 아니면 최소한 식사를 하면서 마시는 것이 그나마 알코올의 흡수를 늦추어 뇌를 타격하는 알코올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세 번째 음주 원칙, 연이틀 마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연거푸 이틀 마시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인 남성이 밤 10시에 맥주 1500cc, 그러니까 권장량의 3배를 마시면 혈중 알코올 농도는 대략 1~2시간 뒤인 11시나 12시에 정점에 이릅니다. 그리고 체내에서 알코올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까지 대략 8시간이 걸리므로 아침 7~8시가 되어야 완전히 술에서 깹니다. 체내로 들어온 많은 물질은 반감기에 따라 분해됩니다. 다시 말해 일정 시간마다 그 양이 50%로 감소합니다. 만약 이 법칙이 알코올에도 적용된다면 술을 아주 많이 마셔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체내의 알코올 농도가 50%로 줄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알코올은 약간 다릅니다. 체내 알코올 농도가 0.02~0.3% 사이에 있을 때에는 알코올은 반감기에 따라 감소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줄어듭니다. 다시 말해 이 범위의 알코올은 체내에 존재하는 양과 시간 당 대사되는 양과 무관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많이 마시면 그만큼 시스템 내에서 완전히 제거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다음 날 아침에 말끔하게 깨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어떤 경우 다음 날 오후에까지 체내에 알코올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따라서 알코올이 몸에서 완전히 제거되려면 충분한 시간이 경과해야 할 것입니다.

 

술은 뇌와 간에는 참으로 좋지 않은 물질입니다. 하지만 삶을 살면서 건강에 좋은 것만 하기는 참 어렵죠. 몸에는 좋지 않더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나쁜 활동도 내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는 허용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두고 천천히 시간을 가지며 적당히 마시는 술은 인생의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건강을 크게 해치지 않는 음주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술을 마셔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마시지 않을 수 있다면 금주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2. 반드시 음식을 먹고 음주를 해야 합니다. 음식물은 알코올의 흡수 속도와 정도는 떨어뜨리고, 알코올의 대사는 촉진합니다.

 

3. 천천히 마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혈중 알코올 농도가 천천히 올라가고 혈중 알코올 농도의 최고치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4. 16도 소주 기준 남자는 하루 3잔, 여자는 1.5잔, 맥주 기준 남자는 하루 500cc, 여자는 250cc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5. 이틀 연속해서 마시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참고 문헌 : The Science of Drinking(Amitava Dasgupta), 진화심리학(데이빗 버스), 고삐 풀린 뇌(데이빗 존 린든), 중독에 빠진 뇌과학자(주디스 그리셀), 도파민 네이션(애나 렘키), 슬슬 술 끊을까 생각할 때 읽는 책(가키부치 요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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