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사람들은 왜 마약을 할까요? | 중독은 개인의 책임일까요? | 중독에 빠지는 이유 | 기전 | 후성 유전학 | 중독 발생 원인 | 기여 요인 |

RayShines 2023. 10. 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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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마약을 할까요? 사람들은 왜 중독에 빠질까요? 인간에게 나타나는 모든 특질들처럼 중독 역시 여러 가지 기여 요인들이 함께 작용한 결과입니다. DNA, 환경, 약물 노출 경험, 청소년기 약물 접촉 경험 등이 기여 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0년 전만 해도 사회는 중독자들을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 기준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과거에는 중독을 부도덕, 종교적 타락, 비윤리적 행동으로 치부했으며 중독자들은 의지가 박약하고 성격이 나약하고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는 이들로 비춰졌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중독자들은 끊겠다는 의지가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약물을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들이 보이는 행동은 어떤 고난과 어려움과 부작용과 파괴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약물을 구해서 사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퍼즐을 풀어야 그 보상으로 코카인을 받을 수 있던 쥐는 매일매일 바뀌는 퍼즐을 열심히 풀고 코카인을 받았습니다. 매일 과제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것은 단순히 습관의 문제로 일축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으며, 중독 행동에 강력한 목표 지향적 조절과 의지가 작용한다는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시각이 바뀐 것은 앨런 레쉬너의 논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지의 문제이든, 부도덕의 문제이든 아무튼 중독을 윤리적 문제로 바라보던 시각이 많이 바뀌게 된 것은 1997년 미국 국립보건원의 앨런 레쉬너 Alan Leshner 가 발표한 “중독은 뇌 질환이다 Addiction is a brain disease, and it matters”라는 논문의 공이 컸습니다. 레쉬너는 도파민 체계를 가리며 “사실상 모든 중독성 약물들이 뇌 안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어떤 단일한 경로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공통된 효과를 낸다(Virtually all drugs of abuse have common effects, either directly or indirectly, on a single pathway deep within the brain)”고 지적하며, 중독을 부도덕이나 타락이 아닌 하나의 질병으로 보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만약 중독이 뇌 질환이라면 이들을 감옥에 가둘 것이 아니라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파민 체계가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알코올 사용 장애에서는 도파민 수치가 높게 나타났지만 여타 물질의 중독에서 모두 같은 양상이 발견되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니코틴, 코카인, 메스암페타민 등의 약물들 역시 도파민 농도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그 경로는 모두 다른 것 같습니다.
 
 
 

중독에는 유전적 소인이 분명히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이 대대로 내려오는 집이 있습니다. 대대로 술을 잘 마시는 집안도 있습니다. 중독에 DNA가 관여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명제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알코올 중독 유전자, 코카인 중독 유전가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물질에 대한 중독을 결정하는 단일 유전자를 찾으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이것의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유전자 개수가 21,000개가량으로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육체적, 정신적 특질의 개수는 2만 개가 훨씬 넘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어떤 형질을 결정하는 데에는 여러 개의 유전자가 관여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며, 실제로는 아마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예를 들어 WHO가 조사한 전 세계 평균 알코올 중독자의 비율은 4~5%가량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알코올 중독자인 경우 그 확률은 40%, 조부모가 알코올 중독자인 경우 20%로 증가하여 각각 위험도가 8배, 4배 증가합니다. 또한 일란성 및 이란성 쌍둥이를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중독 위험 차이의 40~60%가량은 유전적 요인이 설명합니다. 11~1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보상에 과도한 민감성을 보이는 청소년들, 즉 모험 성향, 다른 말로 위험 추구 성향이 높은 청소년의 경우 4년 뒤 물질 사용 장애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습니다. 다시 말해 중독에 쉽게 빠지는 소인을 갖고 태어난 이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 발생에 관여하는 강력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환경입니다.

예를 들어 학사 학위가 없는 중년의 백인 미국인들은 자신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보다 빨리 사망하며 주요 사망 원인은 약물 과용, 알코올성 간질환, 자살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절망의 죽음 Deaths of Despair 라고 부릅니다. 즉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중독에 빠져 사망하는 이들이 매우 많음을 시사합니다. 정신적 외상, 사회적 격변, 가난은 중독 위험성을 높이는 대표적인 위험 인자들입니다. 가혹하고 미래를 예상할 수 없는 환경은 구성원들의 장기적 조망을 꺾어버리고 단기적 만족에 치중하게 만듭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공부를 하고 저축을 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냥 현재의 즐거움이 최우선 순위가 되게 됩니다. 또한 이런 환경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안감에 대처하기 위해 알코올이나 그 외의 약물에 의존하는 것이 일종의 자연적이고 평범한 대처 수단이 되기 쉽습니다.
 
 
 

중독 발생에 기여하는 강력한 요인 중 하나가 얼마나 그 물질을 구하기 쉬운가 하는 것입니다.

중독 환경을 구성하는 다른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중독 물질에 대한 접근 용이성입니다. 1999~2012년 사이에 미국에서 오피오이드 처방이 4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피오이드 계통 진통제로 개발되어 현재는 마약으로 소비되는 펜타닐이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에서는 1917년 미국 의회가 주류의 제조, 판매, 운반 및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후 1920년에 금주령이 내려졌습니다. 말 그대로 이 시기에는 술을 마시는 것이 불법행위였기 때문에 알코올에 중독된 미국인의 수가 급감했었다고 합니다.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는 당연히 사라졌고, 알코올 간질환의 비율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하네요. 그리고 1933년에 금주령이 폐지된 이후 1950년대까지도 금주령의 긍정적 효과가 이어졌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중독 물질을 구하기 어렵게 하면 확실히 그 물질에 중독되는 사람의 절대적 숫자는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금주령은 실패한 법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밀주 제조와 유통이 성행하며 마실 사람은 다 술을 마셨고, 더 많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을 위한 새로운 정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금주령 폐지 이후 1990년대까지 술을 마시는 미국인의 비율은 그 이전에 비해 50%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과거에는 알코올 문제가 덜하던 여성들에서 84% 이상, 65세 이상 장년층에서 50% 이상 알코올 중독자의 수가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술을 아예 못 마시게 하다가 허용하자 예전에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던 그룹에까지 음주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는 것이겠지요.
 
어떤 물질을 한 번 경험했을 때 중독에 빠질 확률을 계산해 본 연구가 있습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알코올을 사용해 본 사람의 4%가 중독에 빠집니다. WHO에서 조사한 평균과 거의 유사합니다. 마리화나는 8%, 코카인은 22%, 헤로인은 35%입니다. 가장 높은 물질은 무엇일까요? 담배, 즉 니코틴으로 80%입니다. 이 정도까지 높은 중독 발생 비율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담배가 합법적인 물질이기 때문에 구하기가 매우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중독 발생에는 학습도 기여합니다.

그리고 중독 발생에 기여하는 한 가지 요인을 더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학습 효과입니다. 학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반복이 필수입니다. 펜타닐 사용자는 주사 후 15초면 황홀감을 느낍니다. 흡연자들 역시 담배를 피운 뒤 15초면 쾌감이 느껴집니다. 속도는 두 가지가 비슷합니다. 그런데 차이는 헤로인 사용자들은 몇 시간, 길면 며칠 동안 다시 주사를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마 이것에 기여하겠지요. 그래서 하루 두 번 정도 아주 빠르고 강한 쾌락을 느끼는 데 그칩니다. 그런데 담배는 아닙니다. 한 번에 열 모든 가량을 빨아들이며, 하루 반 갑을 피우는 흡연자라면 그것을 하루에 열 번 정도 합니다. 따라서 하루에 빠르지만 경미한 쾌감을 200회 이상 느끼게 됩니다. 쾌감이 빠르다는 것은 약물을 사용한다는 행위와 그에 후행하는 쾌감 사이에 강력한 연결고리가 형성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루에 200번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연결고리가 엄청나게 강력해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담배를 한 번이라도 피우면 중독이 되는 비율이 80%나 되는 것입니다.
 
 
 

중독 물질의 경우 우리가 작용 강도와 사용 빈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이것이 악마가 숨어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중독 발생에 대한 설명은 바로 우리 자신이 약물의 작용 강도와 빈도, 즉 사용 간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물질들의 경우, 예를 들어 엔돌핀이나 자연스럽게 분비되는 도파민의 경우 그 작용이 우리의 뇌를 압도할 정도로 강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렇게 진화했을 리가 없겠지요. 그러면 생존에 문제가 됐을 테니까요. 따라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쾌락 물질들의 양은 정맥 주사나 흡입을 통해 유발되는 쾌락 물질의 분비양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물질이 잔잔한 파도라서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난다면, 주사로 투여되는 약물은 해일, 쓰나미입니다.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지요. 또한 위의 담배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중독에 빠지는 과정에서, 혹은 중독에 빠진 이후에 중독자들은 약물의 사용 빈도를 극단적으로 증가시킵니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과정에는 불응기가 존재하며, 이에 상응하는 청소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렇게 잦은 자극을 발생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강한 자극이 빈번하게 발생하도록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중독자들은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약물에 대한 조기 노출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약물에 대한 조기 노출은 중독 발생의 위험도를 높입니다. 약물 조기 노출은 태아, 아동, 청소년의 뇌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발달 시기 동안 약물에 노출될 경우 보상에 대한 민감도가 영구히 증가하여 훗날 자기 임의로 약물을 투여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을 때 더 많은 양을 사용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뇌가 성숙하기 전에 약물을 사용하면 성인기에도 약물 사용을 하게 하는 신경과학적 변화가 발생하는 것을 관문 효과 gateway effect 라고 합니다. 알코올의 경우 폭음은 뇌가 발달 중인 아이들에게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뇌가 계속 자라며 변화하고 있는 시기, 즉 가소성이 높은 시기에 고농도의 알코올에 노출이 되면 뇌에 영구적 변화가 가해진다는 것입니다. 10대 초반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 사람은 알코올 사용 장애 진단을 받을 확률이 4배 높아집니다. 그리고 13~21세 사이에는 음주 시기가 1년씩 늦춰질수록 약물 사용 및 의존에 빠질 확률이 5%씩 떨어집니다.
 
 
 

후성 유전학은 중독에 대한 설명을 일부 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들어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후성 유전학 epigenetics 입니다. 이것은 DNA에는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DNA에 달라붙는 여러 물질들로 인해 DNA의 발현이 조절된다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 변이가 유전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DNA의 변화가 없으면 후손에게 유전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조용히 진화라는 주제를 다루는 무대에서 퇴장했었습니다. 그러나 후성 유전학은 우리가 살면서 경험한 것들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계속해서 검증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대기근을 견뎌낸 가문의 자손들은 충분한 영양소가 공급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도록 대사를 최소화하는  후성유전적 변이를 조상에게 물려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조부모 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부모는 매우 날씬할 수 있으나 나의 세대에서는 어떤 환경적 자극이 있으면 비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다시 한번 조명됩니다. 대대로 적대적이고 가난한 환경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학대와 방임을 당하며 살아와 약물에 중독됐던 이들이 자손을 낳았을 경우 이것이 후성 유전적 변이를 통해 후세에 전달되고, 후세가 유사한 환경에 놓여졌을 때 중독에 빠진다는 설명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후성 유전학을 통해 중독 발생 경로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독은 뇌 질환이긴 하지만, 그것이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책임에 대한 면죄부는 아닙니다.

중독이 뇌 질환이며 질병이라는 증거가 쏟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당뇨가 병이라고 해서 혈당 관리를 하지 않고, 고혈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운동과 식이조절을 하지 않는 것을 병의 증상이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물론 중독 물질을 반복적으로 찾고 구하는 것 자체가 중독에서는 하나의 증상일 수 있으니 당뇨병 환자가 매일 사탕을 먹는 것과 동일 선상에서 바라봐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중독에서 빠져나와 일상을 회복하는 것에는 분명히 개인의 의지와 결정, 그리고 가치관이 개입합니다. 당뇨든 고혈압이든 중독이든 병의 발생 책임이나 사유와는 무관하게 그 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혹은 자기 자신을 관리하기 위한 노력과 책임은 면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중독 물질을 사용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결정임에 분명합니다.
 
참고 문헌 : 도파민 네이션(애나 렘키), 고삐 풀린 뇌(데이비드 J. 린든), 습관의 알고리즘(러셀 폴드랙), 중독에 빠진 뇌과학자(쥬디스 그리셀), 뇌 과학의 모든 역사(매튜 코브), 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브루스 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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