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불안과 두려움 |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갖춰야 할 것 | 불안을 받아들이는 방법 | 불안에서 벗어나는 법

RayShines 2023. 12.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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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며 세상을 헤쳐나가다 보면 너무나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이 주는 실존적 불안이 엄습할 때가 있죠.

 

 

 

우리는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두려움 fear 은 그 원인과 대상이 명확한 경우에 발생하는 경고 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나의 외부에 있으며, 시공간적 좌표를 특정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불안 anxiety 의 경우 그 근원을 항상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다. 불안은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불안의 경우 그 근원이 나의 내부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공간적 위치를 도저히 종잡을 수 없습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공포감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의 재발견>의 저자 조반니 프라체토는 ‘불안감은 이유를 찾고 있는 두려움’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Anxiety is fear that is looking for a reason.”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은 불안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느낌,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느낌, 나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사라질지 모른다는 느낌, 그런 막연한 느낌들이 쌓이고 쌓여 불안이 됩니다. 그런 불안을 느껴보지 않으려고 재미있는 클립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왁자지껄 떠들어보기도 하고,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운동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내 안에 깊이 숨어있던 불안은 어느 순간 갑작스레 내 옆자리에 똬리를 틀고 나를 노려 봅니다. 한 번 의식하게 되면 우리는 불안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고개를 돌리려고 해도 자꾸 불안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지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흘낏 돌아보았을 때 여전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불안과 눈빛이 마주치면 모골이 송연한 느낌이 들며 얼어붙습니다.

 

 

 

각자의 불안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습니다.

불안, 그리고 불안과 관련된 물질들을 측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불안과 관련된 뇌 부위들도 특정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불안할 때 우리 몸에서 변화하는 호르몬 수치, 체온, 땀, 호흡수 등도 모두 계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수치들을 낱낱이 기록한 뒤 ‘지금 이 사람은 불안해하고 있다’고 기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불안은 기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느끼는 불안의 내용은 무엇인지, 그 불안의 서사는 무엇인지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불안하지만, 각자만의 불안을 느낍니다. 누구도 누구의 것과 같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도 나의 불안을 그대로 느끼지 못하리라는 것, 그것이 바로 불안의 본질입니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공개 대중 강연에서 엄청난 재능을 발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의 군중들은 집단적 불안을 느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기존의 가치들이 전부 사라졌기 때문이겠지요. 이정표가 사라지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당시 프랑스 젊은이들의 진실을 찾겠다는 열망은 갈수록 강해졌습니다. 이 시기에 사르트르는 공개 강연을 하기로 합니다. 실존주의라는 말은 사르트르가 고안해 낸 용어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1945년 10월 29일 하기로 한 강연의 제목을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고 정합니다. 언론에서 만든 용어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실존주의는 인간을 행위를 통해 규정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유도 없이 고독하다고 말합니다.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행동하고 느끼고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을 둡니다. 세상은 우리의 기대만큼 정돈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가치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은 적극적인 선택을 의미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나와 나의 삶이 결정됩니다. 우리에게는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선택지를 앞에 둔 인간은 그것에 압도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무한을 가늠할 수조차 없으며,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대상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바로 불안이니 우리가 거대한 인생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삶에 대해서 느끼는 불안은 아직 우리에게 선택할 여지가 남아 있음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한 톨의 불안도 남기지 않고 모두 없앨 순 없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불안을 느낍니다. 하지만 모든 불안을 다 없애버릴 순 없습니다. 모든 형태의 불안을 병으로 규정하고, 약으로 없애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불안은 견뎌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불안이 선택할 수 있는 나의 자유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뇌며 불안을 이겨내고 선택한 뒤 행동해나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불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만의 의미와 목표를 찾고 지켜나갈 수 있다면 불확실했던 그 무엇인가는 명확한 무엇인가로 바뀌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불안도 누그러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정말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인생이란 내가 누구인지 찾아나가는 여정일 테니 말입니다.

 

참고 문헌 : 지식인의 두 얼굴(폴 존슨), 감정의 재발견(조반니 프라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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