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나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은 사치품일까 | 번아웃 증후군 Burnout Syndrome |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RayShines 2023. 11. 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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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은 탈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뭔가를 할 수 있는 인내심과 대처 능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입니다. 

 

 

 

번아웃이라는 말을 흔히 볼 수 있게 된 지도 벌써 꽤 된 것 같습니다.

완전히 타버렸다, 소진되었다 정도로 이해되는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네이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극도의 피로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냥 너무나 피곤한 상태도 번아웃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그냥 피곤하다고 하지 않고 왜 번아웃되었다고 표현을 할까요.

 

 

 

피로라는 말에는 휴식을 취하면 회복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어느 정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피로라는 말을 검색해 보면 ‘과로로 정신이나 몸이 지쳐 힘듦’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과로는 ‘몸이 고달플 정도로 지나치게 일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너무 일을 해서 지친 상태가 피로입니다. 이렇게 피곤할 때는 일에서 잠깐 물리적, 정신적 거리를 두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충분히 자면서 휴식을 취하면 다시 몸에 에너지가 쌓입니다. 다시 또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번아웃은 그냥 피로의 느낌이 아닙니다. 예전에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파는 광고에는 늘 만성피로라는 말이 따라 나왔었습니다. 번아웃은 그냥 피로가 아니라 만성적인 피로와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복합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는 개인에 대한 요구도가 매우 높습니다.

세상이 그만큼 빨라졌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이메일을 멀리 있는 친지들과 자주 연락하며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끼려고 쓰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각종 메시징 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연락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도 매우 크긴 합니다만, 분명히 우리의 삶에 안 좋은 영향도 미칩니다. 연락을 주고받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빠르게 답변하는 것이 의무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마 아주 예전에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은 1~2주일 정도 상대의 답장을 기다리는 것은 별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상대방이 내가 보낸 메시지나 메일을 읽었는지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읽었다면 답변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각 개인들은 상대방에게 언제든지 답장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압박감을 느끼게 되기 쉽습니다. 퇴근 시간 이후에 업무 관련 메시지나 이메일을 법적으로 금지하자는 말이 나오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닙니다. 초고속 통신망의 광범위한 보급은 우리가 어디서든 보고 싶은 동영상을 불편함 없이 즐기게 해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누구도 누군가로부터, 혹은 어딘가로부터 자발적인 이탈을 할 수없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이 안 터지는 곳은 없으니까요.

 

 

 

언제 어디서든 수동적으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사실 굉장한 압박감을 줍니다.

여러 연구들이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함께 있을 때 훨씬 낫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사회적 고립은 인간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관계나 직업적 의무에 무제한으로 노출되는 것은 우리에게 압박감과 피로감을 줍니다. 우리의 뇌가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산을 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인간관계나 직상생활을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상대방과의 거리와 감정적 친밀도를 정교하게 계산하며 나를 어느 정도나 노출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게 참으로 피곤한 일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이들과 있는 시간을 원하게 되는 것이겠죠. 덜 피곤하니까요.

 

 

 

번아웃은 연결되어 있기를 폭력적인 수준으로 요구하는 사회적 압박에 대한 현대인들의 집단적 반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뇌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뇌가 어떤 과제를 수행하지 않을 때, 그러니까 그냥 쉬고 있을 때 활성화되는 네트워크라는 의미입니다. 특정한 부위라기보다는 특정 상황에서 함께 연계되어 활성화되는 부분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광활한 대자연에 놓여지면 자신이 하던 고민이 장엄한 시간의 흐름 속에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고들 하지요. 이 말은 우리는 기회가 주어지면 자기가 하던 고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면 많은 이들이 머리를 비우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작동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 사고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며 나의 과거와 미래, 나의 관점과 가치, 나의 감정에 대해서 곱씹고 정리하며 조금씩 자신을 추스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연결된 사회는 이럴 시간을 우리에게서 박탈해 버렸습니다.

 

 

 

이제 나에 대해서 조용히 생각해 볼 시간은 사치품이 되었습니다.

현대 사회는 과거에는 누구에게나 충분히 주어졌던, 고즈넉이 앉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사치품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비싼 것을 사려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물질만을 쫓으며 사는 사람들은 자발적 종속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쉽사리 번아웃이 오겠지요. 정말 중요한 가치를 찾기 어려울 테니까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간이 사치품이라면 그것을 너무나 바라며 쫓아가는 우리들이 번아웃이 오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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