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너 T야? | F는 좋고 T는 나쁠까요 | MBTI | 감정 | 이성 | 누칼협 각자도생의 시대

RayShines 2023. 11. 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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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T야?”라고 묻는 것이 하나의 밈이 됐습니다.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푸념과 비난이 섞여 있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T는 그렇게 나쁜 걸까요.

 

 

 

MBTI의 T와 F, 즉 이성과 감정의 대립은 수천 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비유했습니다. 당연히 하나는 이성이고 하나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두 가지를 서로 평등한 관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둘 사이에는 명확한 위계가 존재했으며, 예상하듯 이성이 당연히 위에 있습니다. 플라톤은 도덕성이나 자기 절제, 명예를 사랑하는 행동 같은 것은 정신적 추론, 그러니까 이성적인 사고에 근거해 있다고 생각했던 반면, 감정은 그런 것과는 완전히 무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이끄는 말 중 감정은 욕망, 흥분, 자극에 사로잡혀 폭주하는 야수 같은 말이며 그로 인해 주인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플라톤의 그러한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한 것이 프로이트였습니다. 프로이트는 쾌락을 추구하며 본능 외에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드 id 와 도덕적이고 논리적인 초자아 superego,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자아 ego 라는 개념을 개발해 냈습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이드가 무의식의 심연에서 작동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 중 어떤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조절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으로 여겨지던 인간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으며, 그런 인간을 움직이는 다른 추동력이 있을 수 있다는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본능과 이성의 대결을 격화시켰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관하게 이성이 감정을 억누르고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어져 왔습니다.

감정은 예측하기 어렵고, 제멋대로 굴고, 인간을 원치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 지배적 생각이었고, 이성이 없으면 인간은 옳지 않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이성이 감정보다 더 위에 있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성적 인간을 감정적 인간에 비해 더 잘 조율되어 있고, 뛰어나고, 이상적인 존재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감정적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는 감정과 이성은 서로 활발히 의사소통합니다.

물론 이제 이런 개념은 조금 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감정은 우리가 위험을 판단하고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진화적으로 장착된 메커니즘입니다. 두려움을 느껴지면 포식자나 가해자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두며 달아나야 하고, 혐오감이 느껴지는 음식이나 대상과도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은 인간이 생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적절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객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다른 이들에게 무분별한 착취를 당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감정은 매우 중요한 것이며, 이성이 무조건 감정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감정과 이성이 서로 긴밀하게 의사소통하며 협조한다는 것 역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너무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는 울면 안 되고,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룰 같은 것이 있었을 정도이니까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자유에 대한 강력한 억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 같으며, 세게 누른 만큼 세찬 반발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이성적인 대응을 하는 사람들을 일침충, 설명충이라고 부르며 폄하하고, MBTI가 유행이 되자 T 우세적으로 나오는 이들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며 비난하는 일도 발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어느 순간 우리 사회의 모토가 되어 버린 것 같은 각자도생, 누칼협 등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려 하지 않는 행태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불행에 대해서 공감하려 하기보다는 그러길래 누가 칼 들고 그거 하라고 협박이라도 하더냐는 비아냥 섞인 말을 던지는 것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인간에게 발생하는 불행들은 많은 변수와 요인들이 작용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 일의 발생에 각 개인이 기여한 부분이 크긴 하겠으나,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누칼협이라는 말은 불행의 발생에서 사회, 제도, 문화적인 책임은 고스란히 도려내버리고,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그런 식으로 개인의 행불행에 대해 개인의 책임이 절대적인 것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강력하게 공감을 요구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반작용의 일환으로, 강력하게 공감을 요구하는 분위기도 생겨났습니다. 사회에 발생하는 많은 문제가 각 개인의 공감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서로 간에 공감을 할 수 있으면 많은 것이 해결되기는 하겠습니다만, 사회에서는 제도나 법인 같이 인간적 객체가 아닌 것들의 힘이 매우 크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누칼협을 외치며 타인의 불행에 무감각해하고, 다른 쪽에서는 너 T야를 외치며 나의 불행에 공감을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감정은 순식간에 자동적으로 발생합니다.

감정의 발생은 절대 막을 수가 없습니다. 감정은 생각보다 빠릅니다. 감정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생리적 변화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경험이나 우리의 해석을 느낌 feeling 이라고 합니다. 감정의 발생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우리는 감정을 우리 행동의 판단 근거로 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화가 나면 이것은 부당한 일이고, 내가 슬프면 내가 피해자라는 식의 결론으로 바로 비약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실 꼭 그렇진 않습니다. 나의 감정은 실제 벌어진 일,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객관적인 사실과는 무관한 경우도 꽤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판단이나 행동의 근거로 삼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때도 꽤 많습니다. 그래서 감정이 가시고 난 뒤에 생각을 하고 차분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이 낫다는 말들을 하는 것이지요.

 

 

 

너 T야라고 묻는 것은 상대방에게 공감을 요청하는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감은 대단히 변화무쌍한 개념입니다. 주입과 회수가 아주 쉽습니다. 어제까지는 서로 비난하며 싸우던 지역 연고 스포츠팀들의 팬들이 국가 대항전을 할 때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응원을 합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가 미국의 동맹국이고 독일이 적국이었을 때 미국인들은 러시아인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동맹 관계가 뒤집어지자 독일인에게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감은 상황에 따라서 매우 바뀌기 쉬운 감정적 투자입니다. 생각도 그렇긴 하지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은 그나마 변화가 좀 덜하지요. 어찌 보면 쉽게 줬다 뺏을 수 있는 공감을 해주는 척하는 것보다, 상대방을 위해 꼼꼼히 생각을 해보는 것이 더 에너지가 많은 드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상황을 상상해 보며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역지사지를 해보는 것을 인지적 공감이라고 합니다. 상대방과 나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리며 감정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정서적 공감이라고 합니다. F들이 하는 것은 아마 정서적 공감이고, 요새 사람들이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도 정서적 공감일 것입니다. T들이 만약 공감이라는 것을 한다면 그것은 인지적 공감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T들이 하는 것 역시 공감이기는 하지만 F들이 요구하는 형태의 공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공감이라고 볼 수 있으니 무조건 비난할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방식이 다를 뿐이니까요.

 

참고 문헌 : 습관의 알고리즘(러셀 폴드랙), 감정의 재발견(조반니 프라체토), 빈 서판(스티븐 핑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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