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세상은 애매하고 모호합니다 | 철이 든다는 것의 의미 | 철부지 | 철든다는 말의 뜻 | 회색지역을 받아들이는 것 | 권선징악 | 성선설 | 성악설

RayShines 2023. 12. 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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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모호하고 애매한 회색지대가 더 많습니다. 성인이 되는 조건 중 하나가 그런 불분명한 세상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과서적으로는 권선징악,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 좌와 우, 흑과 백이 명확하게 구분이 됩니다.

악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잘 삽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는 질문 앞에 신은, 그리고 현자들은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들며 명확한 판결을 내려줍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관점에 있어서도 이상적으로 양측이 뚜렷하게 구분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흑과 백으로 일도양단해 줍니다. 그래서 헷갈릴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이 느껴집니다. 세상의 어느 곳에서도 두 구역 사이의 경계선이 명확하게 그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개인은 그 경계선을 잘 살펴보고 건널지 말지만 결정하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그렇습니다. 10살 전후의 아이들은 규칙이 한 번 정해지면 그것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덕적 판단에 있어서 매우 경직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쁜 사람이 벌을 받지 않는 만화를 보면 이상하다고 느낍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도덕적 결함을 갖고 있는 악한들로 구성된 피카레스크 장르를 보면 아이들은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권선징악으로 끝맺음되지 않는 부도덕한 결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나이가 들고 불가피하게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면 우리는 어렴풋이 세상이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인간의 평등하고, 각각의 인간은 책임감을 느끼며 자유를 누리는 것이 이상적인 세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모든 인간이 정말 평등한 것인지, 아니면 평등해야만 하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외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자유가 좋은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겠으나, 과연 모든 사람들이 자신뿐만 아니라 제3자의 자유도 지키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갈수록 사라집니다. 좋은 제도가 있으면 모두가 그것을 선의를 가지고 이용해서 모든 이에게 적절한 혜택이 돌아갈 것 같지만, 반드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며 어디에나 무임승차자가 있죠. 이런 일을 겪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일까 하는 자문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악한 사람이 있긴 합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악랄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고 보기는 또 어렵습니다. 그러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 자체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우리 사회도 존립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대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도덕률을 마음속에 새기고 늘 법을 지키려고 마음먹고사는 대신, 상황에 따라서 규칙을 조금 어기기도 하고 자신의 사정에 맞추어 규칙을 조금 구부러뜨리기도 합니다. 정말 성인군자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수는 아마도 악의를 갖고 사는 사람들보다도 더 적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이 사는 이들의 대부분이 선과 악, 옳고 그름 중 한쪽에 명확하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순수한 선, 그리고 순수한 악이 차지하는 영역보다 그 사이 어디 즈음인 회색 지대가 차지하는 영역이 훨씬 더 넓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선과 악의 경계선이 칼로 잘린 듯 깨끗하게 잘려있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넓은 완충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이 지역에서 살아갑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선한 영역 쪽에 더 가까이 있으면서 선의 영역 쪽에 들어갔다 오기도 할 것이고, 또 그 반대의 사람들도 있겠죠.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100% 순수한 선과 악은 아닙니다.

 

 

 

회색 지대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리는 일상적 결정들의 대부분은 상식에 근거하여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내 사정이 급할 때는 상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장실이 너무 급하면 무단횡단을 하기도 하고 과속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큰돈 앞에 눈이 멀어 횡령 사건에 연루되는 사람들 중 정말 악인들도 있겠으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배가 고프다고 우는 아이를 위해 쌀을 훔치는 가난한 부모의 기사를 보며 그들의 절도 행위에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도 그 상황이 되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과 악도 중요하고, 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존이고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반드시 생존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각자가 선과 악보다, 준법보다, 책임과 의무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좇을 수 있습니다. 그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 전혀 악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에게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니까요.

 

세상의 이런 모습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상에서 살아나가기가 매우 힘듭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가 원칙을 어기는 것을 수용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세상의 불의 앞에 눈을 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모든 부정에 분노하다 보면 너무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회색 지대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을 철이 드는 것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세상의 때가 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내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한정된 내 에너지를 더 생산적이 곳에 쓰지 못할 수도 있으니 차분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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