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디오니소스의 이중성 | 주신 | 알코올 중독에 대한 이중성 | 바쿠스 | 바카스 | 마에나드 | 바칸테스 | 프로테우스 | 아가베

RayShines 2024. 1.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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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신으로 알려진 디오니소스는 참으로 이중적인 신이었습니다. 자신을 숭배하지 않는 이들은 무참히 죽여버렸습니다. 디오니소스에게 끔찍하게 목숨을 빼앗긴 대표적 인물이 펜테우스입니다.

 

 

 

디오니소스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디오니소스는 신 중의 신인 제우스와 세멜레라는 인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제우스는 헤라의 계략에 넘어가 죽게 된 세멜레의 뱃속에서 디오니소스를 꺼내 자신의 허벅다리 안에 넣고 열 달을 채운 뒤 태어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지금의 인도로 알려진 힌두스에 있는 뉘사 산의 요정에게 키우게 했습니다. 디오니소스라는 말이 뉘사 산에서 자란 제우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테이레시아스라는 눈먼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테바이의 왕인 펜테우스에게 디오이소스를 섬기지 않으면 사지가 갈가리 찢겨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펜테우스는 이 말을 듣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장님이라고 그를 조롱한 뒤 쫓아내 버립니다. 이렇게 건방을 떠는 인물은 꼭 신화 속에서 끔찍하게 죽기 마련이지요.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것을 거부하던 테바이의 왕 펜테우스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디오니소스가 테바이에 도착하자 그는 직접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신도들이 모여있는 키타이론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 중턱의 한 공터에 그가 서 있는데 갑자기 그의 어머니 아가베가 달려옵니다. 그리고는 이 멧돼지를 죽여야 한다며 자신의 자매들인 아우토노에와 이노, 그러니까 펜테우스의 이모들을 부릅니다. 아우노토에는 칼로 펜티우스의 오른팔을 잘라버립니다. 이노는 남아 있는 왼팔을 잘라버립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아가베는 자신의 머리로 그의 머리를 받아 머리를 깨뜨려 버립니다. 그렇게 펜테우스는 최후를 맞이합니다.

 

디오니소스는 자신을 섬기지 않는 자에게는 처참한 죽음을 가져다주는 신입니다.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여자 광신도를 마에나드라고 하는데, 이들은 3년에 디오니소스의 지팡이에 맞으면 광기에 휩싸여 미친 듯이 날뛴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때려죽인 아가베도 역시 마에나드였을 것입니다.

 

 

 

디오니소스는 쾌락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을 숭배하는 신도들에게서는 두려움을 가시게 해주고, 용기를 북돋워줍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그의 신도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술에 취해 있을 때 신도들은 마치 자신이 신이 된 듯 자유와 자신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술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면 행복감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다시 술을 마시게 됩니다.

 

 

 

동시에 디오니소스는 위에서 봤듯이 자신을 섬기지 않는 자들에게는 무자비한 죽음을 내립니다.

술에 취한 어머니에 의해 살해당하는 아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끔찍합니다. 여기서 그를 숭배하지 않는 자를 죽이는 자가 그를 숭배하는 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술에 취한 자가 술에 취하지 않은 자를 파괴한다는 뜻이니까요. 어머니에게 죽임을 당하는 아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참혹합니다. 술에서 깨어난 아가베가 어떤 심정을 느낄지를 상상하면 더 끔찍합니다.

 

 

 

디오니소스의 이중성은 알코올의 이중적 효과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를 두 개의 모습을 지닌 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알코올의 효과와도 비슷합니다.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행복감과 도취감을 느끼지만, 알코올에 중독이 되고 나면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 고통이 찾아옵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기분이 좋으려고 술을 마시는 게 아닙니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술을 마십니다. 이것은 알코올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중독 물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처음에는 쾌락을 위해서 중독 물질을 사용하지만, 나중에는 불쾌와 고통이 디폴트 값이 되기 때문에 그런 부정적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주 잠시라도 지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물질을 사용하게 되지요.

 

 

 

알코올 중독을 바라보는 시각도 매우 이중적입니다.

술을 둘러싼 이중성이 디오니소스와 알코올의 효과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알코올 중독을 바라보는 시각도 매우 이중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은 정신력으로 마시는 거라는 말을 합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마시면 취하지도 않고 실수도 하지 않는다고들 하지요.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주사가 없는 거라는 말도 합니다.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다음날 지각하지 않고 출근해서 일을 잘하면 그게 참으로 사회생활을 잘하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 관대할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고 벌어지는 실수들에 대해서도 매우 관대합니다.

“술 한 잔 하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며 술자리에서 벌어진 일들을 눈감아 주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당사자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데 모든 이들이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끝내고 수습한 상황일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음주 운전에 대해서도 매우 관대하죠. 그런데 실수가 몇 번 반복되면 어느 순간 놀라울 정도로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이 바뀝니다. 처음에는 술 마시고 실수도 좀 할 수 있다고 너그럽게 용서를 하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태도가 바뀌며, 술을 잘못 배웠다, 술 마시고 하는 말이 진심일 것이다, 저렇게 술을 마시면 어떻게 하느냐는 등의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술에 그토록 관대한 사회에서 이상한 일이지요.

 

 

 

이중성이 극에 달하는 것은 알코올 중독이라는 진단이 내려지고 나서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모든 문제는 그 사람의 도덕적 문제로 귀결됩니다. 술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술을 마신 이의 잘못이며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여기며 중독에 빠진 이들을 비난합니다. 알코올 중독, 혹은 알코올 사용 장애는 의사가 내리는 진단입니다. 즉 병이라는 뜻입니다. 병을 치료하는 데 개인의 의지가 작용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의지가 전부는 아닐진대 알코올 중독 환자들에게는 병의 시작부터 치료의 종결까지 모든 것의 의지 부족이라는 말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해지는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길거리에서 술을 마셔도,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는 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셔도,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해도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이유로 형을 감경하는 문화인데, 알코올 중독자들에 대해서는 이보다 더 날 선 비난을 할 수 없습니다. 마치 자신의 테두리 안에 있는 신도들과 그 밖에 있는 자들을 칼로 자르듯 차별하는 디오니소스 같지요. 알코올은 그것의 영향 하에 있는 사람들을 이중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그것의 영향 하에 있는 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까지도 이중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정말 이상한 물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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