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중독자들에게 화가 나는 이유 | 습관 부도덕 타락일까요 | 병 뇌질환일까요 | Alan Leshner 앨런 레쉬너 레시너

RayShines 2024. 1.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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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는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중독은 뇌 질환이다"라는 논문이 1997년 발표됐습니다.

1997년에 미국 국립보건원의 앨런 레쉬너가 “중독은 뇌 질환이다.(Addiction is a brain disease)”라는 내용의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하기 전까지 중독을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중독은 비윤리, 부도덕, 종교적 타락, 의지박약, 성격적 결함, 무분별한 생활 등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대다수의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중독자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의지가 부족하고, 삶에 규율이 부족한 이들이라고 보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물질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중독에 빠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극명하게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술은 매우 구하기 쉬운 중독성 물질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85%가 술을 마시지만 실제로 음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정도의 중독에 빠지는 사람은 10%가 채 되지 않습니다. WHO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알코올 사용 장애가 가능한 인구는 4% 정도입니다. 따라서 술을 말 그대로 즐기는 것에 큰 문제가 없는 80%의 사람들이 4%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다지 관대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반대로 담배에 대해서는 이런 역학 관계가 완전히 바뀝니다. 담배를 피워본 사람의 80%가 중독에 빠집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담배를 한 번이라도 피워본 사람은 대부분 담배에 중독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알코올 중독자를 바라보는 시각과 니코틴 중독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타락한 사람으로 보는 사회는 거의 없습니다.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이니 줄이는 것이 좋겠다 정도의 권고는 합니다. 대다수가 중독에 빠지는 물질이라면 사회적으로 그 물질에 중독된 사람들에 대해서 관대해지는 면이 있는 것이지요. 물론 알코올 중독자들에 대한 시각이 곱지 못한 것은 비단 그 숫자가 니코틴 중독자보다 적어서는 아닙니다. 알코올은 다른 물질과 달리 중독자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큰 물질입니다. 주취 상태에서 보이는 공격적 행동이라든가, 음주운전이라든가 하는 일탈 행동으로 인해 타인들에게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일이 다른 약물에 비해 월등히 많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에서는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가시 돋친 눈빛을 보냅니다.

 

 

 

그러나 중독이 뇌질환이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병이라는 것은 균에 감염되거나, 아니면 타고 난 소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걸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독은 중독자의 행위가 개입되어야 병에 걸릴 수 있고, 중독 행위 자체가 증상이라면 자신이 그 행동을 해야 증상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그것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술을 마시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헤로인을 주사하고 있더라 하는 중독자의 말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 행동을 하는 주체가 본인인데 마치 자신이 그 주체가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독의 본체 중 하나가 조절력의 상실이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핑계라고 보는 경향이 높습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의지로 행동을 조절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말입니다. 우리가 만든 대부분의 사회 제도와 법률 체계들은 인간이 어떤 의도와 의지를 갖고 행동을 하며, 그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고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쌓아 올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면 모든 법령과 규칙들은 휴지조각이 되겠지요. 나도 모르게 살인을 했다, 나도 모르게 도둑질을 했다는 말이 정당화될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믿어야 합니다.

 

 

 

사회 경제적 발전을 저해하는 나쁜 중독에 대해서 우리는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합니다.

알코올 중독뿐만 아니라 그 외의 물질에 중독된 사람들에 대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부정적 시각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나쁜 중독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중독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우리가 선행에 중독된 사람이나 기부에 중독된 사람은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에 중독된 사람도 물질 중독자들처럼 비난하지 않습니다. 이들도 도움이 필요할 수 있겠으나 사회적으로 용인된 행동에 중독된 사람들을 우리는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일 중독자들을 모두 입원시키면 아마 우리나라 대기업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정부에서 마약 중독을 엄한 벌로 다스리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독이 뇌질환이라는 이해와는 무관하게 경제 활동을 해야 할 인구가 마약에 중독되면 국가 발전이 저해됩니다. 일을 할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그들을 중독으로부터 회복시키는 데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어떤 도시에 즐비하게 쓰러져있는 마약 중독자들의 사진을 보고 우리가 혀를 차는 것은 중독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겠으나 피상적으로는 그들의 중독의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 경제적 부담을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데 저 사람들은 마약을 하면서 황홀경에 빠져 아무 일도 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그들에 대해 도덕적인 판단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중독이 뇌 질환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하는 것은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어떻게든 마약을 근절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요즘 들어 어린 학생들까지 마약을 한다는 뉴스를 볼 때면 정말 겁이 납니다. 유튜브에 나오는 미국의 그런 광경이 우리나라에서 재연되는 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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