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 데이빗 로젠한 Rosenhan | 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

RayShines 2024. 2. 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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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로젠한 David Rosenhan 의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증상을 속여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상적인 사람들을 통한 연구였습니다. 논문의 제목은 “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 “광기 속에서 정상인으로 지내는 것” 정도가 되겠으며, 1973년에 게재됐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무엇일까 궁금해질 때가 있죠.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은 모두 정상으로 분류되고, 소수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비정상인 것일까요.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행동은 정상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비정상인 것일까요. 문화적으로 수용될 수 있으면 정상인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비정상인 것일까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 사이의 경계는 또 어디일까요.

 

 

 

로젠한과 그의 동료들은 증상을 꾸며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밝힙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데이빗 로젠한과 그의 동료들은 자신이 잠깐 환청을 들었다고 호소하였고, 그 결과 12명 중 8명이 입원을 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 중에 아마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그래서 입원이 인정된 것이겠지요. 이들은 사실 환자들이 아니었고 실제로는 심리학 대학원생 1명, 심리학자 3명, 정신과 의사 1명, 소아과 의사 1명, 주부 1명, 화가 1명로 구성된 실험 참가자들이었습니다. 입원된 직후 이들은 자신들이 입원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사실대로 밝히고 정상인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이 입원하게 된 주요 요인이었던 환청은 이제 사라졌다고 주장하라는 지침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들이 의도적으로 증상을 꾸며 입원을 했다고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나 병원 인력들 가운데 이것이 실험임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들은 짧게는 7일, 길게는 52일 간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퇴원했으며 평균 재원 기간은 19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에게 정신장애가 없음을 알아차린 것은 오히려 환자들이었습니다. 118명의 환자들 중 35명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고 하네요. 이들 중 한 명은 “당신은 미치지 않았어요, 당신은 언론인이나 교수죠?”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한 정신병원이 로젠한에게 자신들은 그런 얕은 수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공언하자 로젠한은 3개월 내에 가짜 환자 한 명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193명의 환자 중 41명이 최소한 한 명의 병원 직원에 의해서 가짜 환자로 분류됐고, 42명은 가짜 환자로 의심받았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놀라운 것은 로젠한이 단 한 명의 가짜환자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증상을 꾸며내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완전히 구분해내는 것은 어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를 속이겠다고 마음 먹고 병을 만들어낸 의도적 환자들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것까지는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기꾼이 마음 먹고 상대를 속이면 다들 넘어간다고 하지들 않던가요. 환자들이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의심을 크게 하지 않는다면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에 대해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바로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이는 연구진들이 환자가 아니라고 의심한 사람들이 없다는 부분입니다. 어째서 아무도 이들에게 정신장애가 없다는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 사실은 한 번 내려진 진단, 그리고 이들에 대해 정해진 의견을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입원 이후 그들이 보인 모든 행동은 그들이 정상이라는 가정이 아니라 그들이 정상이 아니라는 전제 위에서 설명되고 기술됐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근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인간은 의견을 정하고 믿음이 생기면 그에 맞추어 세상을 봅니다.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이 한 번 정해지고, 그것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면, 그 이후 그것과 관련되어 벌어지는 모든 이들은 기존의 의견과 믿음을 확고히 하는 방식으로 해석됩니다. 믿음와 의견을 약화시킬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무시되거나 왜곡되기 쉽습니다. 옛말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로젠한의 실험이 바로 이 말에 대한 통렬한 증거입니다. 의견이 정해지면 눈에 색안경이 씌워지고, 터널 비젼이 형성되며, 강력한 필터가 작동하며 자신의 믿음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것들만 의식으로 접수되고, 중립적인 사실이나 사건들도 믿음을 단단하게 하는 쪽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누군가의 생각이 한 번 비정상적인 것으로 결정되면 그 이후 그가 보이는 생각이나 행동은 그 어떤 것이더라도 비정상이라는 도장이 찍힐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 실험을 보면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제 정신이 아니야”, “정상이 아니네”, “비상식적이야”라는 말들의 무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은 증거와 논리에 입각한 이성적인 논증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즉각적으로 정해진 인상에 대한 사후 합리화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문제에 대한 거듭되는 의심은 필요한 것이며, 주요한 전제에 대한 거듭되는 회의 역시 필요한 것입니다.

 

참고 문헌 : 믿음의 탄생(마이클 셔머), 스켑팁(마이클 셔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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