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출산율 저하,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 딩크 DINK 는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의 미래

RayShines 2024. 1.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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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아이를 낳지 않는 현상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이것이 우리 자신과 사회,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기억에 국가는 늘 존재해 왔습니다만, 사실 백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씨족촌이 존재했고, 매우 단단하게 결속된 소규모 공동체가 명백하게 존재했습니다. 국가와 정부가 존재하긴 했어도 국가의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사회복지라든가 사회적 안전망 같은 부문에까지 자원을 분배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여전히 최악의 상황을 막아주는 완충 장치는 필요했을 것이고 공동체에서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공동체 내에서 치료도 하고,  출산도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졌으며, 양육과 훈육의 책임도 공동체 내부에 부분적으로 분산되었습니다. 불과 오십 년 전만 해도 밭일을 나간 엄마가 집에 없으면 옆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는 것이 그다지 무례한 일이 아니었고, 이웃집 어른이 다른 집 아이의 예절을 나무라는 일 역시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서로 자원과 규약을 공유하는 사이었기 때문에 책임과 의무 역시 공유한다는 원리로 공동체는 작동했습니다. 공동체가 너무 탄탄하다 보니 공동체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거나, 공동체의 관행으로부터 일탈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또한 엄혹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이 공동체에 기대지 않고는 생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시절에 가장 큰 형벌은 추방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로부터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만 했고, 공동체의 규율을 어겨서도 안 됐습니다. 공동체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장치였던 동시에, 다양성과 발전을 저해하는 족쇄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소규모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 너무 공고한 나머지 중앙정부에 대한 의무는 소홀히 하는 경우도 생겨났기 때문에 국가는 단단히 결속된 소규모 공동체를 해체하고, 대신 개개인의 국가에 대한 의존을 높이고자 하는 뱡향으로 정책을 펼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됐겠지요. 이제는 누구도 옆집 아이에게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 만으로 옆집에 가서 저녁밥을 얻어먹는 아이도 없을 것입니다. 소규모 공동체는 완전히 해체됐습니다. 출산은 의학의 영역이 되었고, 양육은 완전히 개인과 한 가구의 책임이 되었습니다. 자원을 공유하지 않으면 의무와 책임도 공유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이를 키우는 것은 극단적으로 노동, 시간 집약적인 과제입니다.

여러 명이 한다면 비교적 수월한 일이지만, 한두 사람이 집중적으로 해야 할 때는 정말 힘이 듭니다. 인간은 매우 늦되는 동물입니다. 독립생활을 하는 데까지 10년도 넘게 걸립니다. 그전까지는 단독으로 생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어른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규범이나 예절은 너무나 복잡다단해서 학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단순히 생존할 수 있다고 해서 인간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가르쳐야 합니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의 양육, 훈육, 교육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아이가 매우 어릴 때는 24시간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제대로 먹고 자는 것도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면 잠시 눈을 붙이고, 자신의 식사를 챙길 수 있지만 그런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는 시간이지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합리적 결정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자산의 가격들은 미친듯이 상승해서 맞벌이 부부라고 하더라도 집 한 칸을 마련하기가 어렵습니다. 한쪽이 돈을 벌고, 한쪽은 양육을 전담하더라도 차곡차곡 돈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었던 시절을 이제 영영 간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부부가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서울에 집을 사는 데 거의 10년이 걸립니다. 출산과 양육을 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순간 내 집 마련의 꿈은 더 멀어집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삶과 시간과 미래를 포기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하나 하는 의문이 당연히 되는 사회가 됐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고 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과열된 입시 교육 체제에서 우리 아이가 과연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힘든 삶을 사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결론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성적으로는 합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산, 양육 이후 가치관이 변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아이를 낳고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비단 출산과 양육에 대한 의견뿐만 아니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아이를 낳아본 사람들이 더 우월하다거나, 혹은 그 반대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달라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책임감이란 단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이는 전적으로 부모의 결정에 의해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갖고 태어난 DNA와 환경 역시 거의 전적으로 부모가 결정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를 태어나게 한 것뿐만 아니라 갓난아이부터 아주 어린아이가 겪는 그 모든 것들에 부모의 기여분이 거의 100%입니다. 이 깨달음이 한 인간을 숙연하게 만듭니다. 내가 모든 것을 줬고, 내가 세상인 줄 아는 채로 살아가는 아이, 그리고 부모에게 자신을 완전히 위탁하는 아이를 보면 책에서 읽었던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책임감이란 나를 믿고 잠들어있는 아이의 숨소리를 듣고 느껴지는 불안감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모든 부모가 책임감 있는 존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모가 되기 전후로 책임감이라는 가치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나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의 영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멀리까지 미치는지, 또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자연스럽게 자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인간의 성장과 발전에 한 개인의 역할, 부모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과 공동체, 문화의 역할이 얼마나 큰 지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회, 정치, 문화 등에 대해서 그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예전과는 다른 조금 먼 조망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이 절대다수가 된 사회는 어떤 시각과 의견을 가지고 운영될까요?

태어난 인간이 성장하고, 사회적인 역할을 결정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그 경로에서 벗어난 이들을 고까운 시선으로 보게 만들기 때문에 분명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결정에 따라 얼마든지 아이를 낳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조금 큰 시각에서 본다면 사회의 절대다수가 “그래도 아이는 낳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아이를 낳아서 뭐 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단순히 출산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꽤 큰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한 개인이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해 가지는 책임감과 의무에 대한 범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고, 가치관에도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런 변화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전체주의적이고, 집산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악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아이를 낳은 성인들이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해 왔고, 그런 이들이 바라보는 사회, 문화, 경제, 정치적 조망이 한 데 모여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집단의 의견이 어떤 방식으로 변할까요. 물론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내겠으나, 혹여 현재의 삶에만 충실하고자 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조금은 우려가 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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