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을 생각해 보면 인간이 왜 근시안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냥을 하고,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 먹으면서 생존할 수밖에 없던 시기에는 눈앞에 있는 것을 저장하는 것보다 그냥 다 먹어치우는 개체가 더 오래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배가 좀 불러도, 그리고 내일은 오늘같이 운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고 해도 내일을 위해서 쉬운 사냥감을 그냥 보내주거나 잘 익은 열매를 그 자리에 두고 그냥 떠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일단 눈앞에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내일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가까운 것을 바라보는 것이 더 쉽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게는 미래를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전전두엽으로 불리는 진화적으로 가장 최신의 뇌는 우리가 먼 미래를 바라보며, 매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우리와 가장 진화적으로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영장류인 보노보도 짧은 미래를 바라보고 대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보노보는 먹이를 꺼내는 데 쓸 수 있는 도구를 길게는 14시간까지 들고 다닌다고 합니다. 이것은 보노보가 그 정도 시간 후를 예상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카푸친원숭이라는 종은 배가 부를 때까지 가능한 많은 양을 먹고 나머지는 다 버립니다. 이 두 행동은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인간이 장기적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추상적 대상과 관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허구적인 것을 뇌 속에서 실제적인 것으로 개념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를 타인과 공유할 수도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힘을 합쳐 도랑을 파자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그 도랑은 아직 현실에 실재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속에만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전전두엽 피질은 이를 동시에 뇌 속에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논의하고 그것을 현실화하는 계획을 세우고 수행하여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허상을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그 허상이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여러 사람이 그 허상이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장기적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은 타인과 사회적 구조에 매우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다른 사람이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의견이 모인 사회의 제도는 미래를 어떻게 구상하고 그게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는지를 인간은 예측하고 자신의 미래 예상과 계획을 조정합니다. 만약 정부에서 어떤 물건의 가격에 세금을 많이 매겨 가격을 올리겠다는 발표를 하면 사재기를 하는 수요가 생길 것입니다. 정부가 조만간 금리를 내리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던지면 시장의 돈은 자산 시장으로 달려갑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전전두엽이 미래에 대해서 그리는 그림에 따라서 미래는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특성상 제도와 정책의 역할이 매우 클 수밖에 없습니다. 작든 크든 사회적 제도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있으면 사람들은 거기에 맞춰서 자신의 계획에 미세조정이든 거대조정이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통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변화는 더 즉각적인 것이 됐습니다.
예전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때는 사회적 구조가 그렇게 빠르게 변화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방금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이제 트렌드는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늘 글로벌한 것이 됐습니다. 따라서 변화의 속도와 규모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미래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장기적 조망을 갖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의미입니다. 내 예상이 몇 년이 아니라 몇 주도 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예측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자연스럽게 장기적 계획을 갖고 무엇을 하기보다는 닥치는 대로 적응하며 살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제도나 정책이 사회적 변화를 어느 정도 완충하며 구성원들이 장기적 조망을 가질 수 있도록 로드맵을 제시해 줄 필요성이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제도나 정책 역시 세상의 변화에 따라 1년에도 몇 번씩 바뀐다면 구성원들이 느끼는 혼란감과 예측 불가능성은 배가되며 다들 목전의 이익에만 급급하게 됩니다.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저 눈앞에 떨어져 있는 과자를 주워 먹으며 낭떠러지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입니다.
사회와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인터넷과 SNS, AI, 메타버스 등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고 한 번에 바꾸어버리겠다고 공언하는 기술들이 우리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기술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의 발전은 막기 어려운 것이고, 인간에게 이롭게 쓰인다면 좋은 것이지요. 과학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그것의 해결책이 무지는 아니라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말도 있듯이 기술의 발전은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정책과 제도는 중심을 지키며 구성원들이 장기적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보조해줘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다면 각 구성원들의 권리와 권한을 이양받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던 사회와 국가라는 것의 존재 가치가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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