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해리성 정체감 장애와 SNS |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RayShines 2024. 1.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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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성 정체감 장애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 라는 정신장애가 있습니다. 한 사람 내부에 여러 개의 정체성이 존재하는 장애이며, 정체성끼리는 서로 차폐되어 그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병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 개인이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 것이 매우 간단해졌습니다.

 

 

 

요새는 조금 뜸해진 것 같습니다만 연예인들이 부캐를 갖는 것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죠.

본캐릭터는 부캐릭터를 마치 제3자처럼 대하고, 본캐릭터와 부캐릭터 간의 세계관이 중첩되지 않게 신경 쓰기도 하더군요. 카메라에 담긴 뒤 편집되어 송출되는 것들은 그 모두가 허구라고 생각한다면 이 모든 것들이 그냥 쇼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재미있으면 그뿐입니다. 이것을 보는 사람들이 유재석과 유산슬이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헷갈려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재미로 그러는 것이라는 걸 다 알고 있으니까요.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여러 개의 계정을 소유하며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대중에게 보여지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경우, 그러니까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도 여러 개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경우가 이제 매우 흔합니다. SNS나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여러 개의 계정을 갖고, 계정마다 다른 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매우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활동할 수 있고, SNS 상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의견을 가진 논객인 것처럼 굴 수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그 두 계정의 주인인 당사자만 그것이 둘 다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익명성은 자유의 원동력인 동시에 혼돈이기도 합니다.

초창기에는 인터넷이 어떤 의견이든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는 열린 장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과 모든 사람이 현실 세계에서의 계급이나 경제적 조건은 내려놓고 평등한 객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아이디어에서 나온 인터넷상에서의 정체성, 즉 id는 결국 익명성과 기술적으로는 완전히 동일한 것이 됐습니다. 아이디만 가지고는 누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 사람이 습과적으로 비슷한 아이디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 요새처럼 lililililiiiillll 같은 아이디를 쓰는 경우에는 사실 알아볼 수가 없지요. 그리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력서에 쓰는 이메일 계정으로는 책잡힐 짓을 전혀 하지 않는 경향을 보입니다. 커리어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은 디지털 활동은 다른 계정으로 합니다. 익명성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서로를 식별할 수 없는 오리무중에 우리를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제 개인은 자신의 아이디를 무한복제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수천 개의 계정을 가질 수도 있죠. 개인이 여러 개의 아이디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서비스들은 많습니다. 각각의 아이디는 인터넷에서는 별개의 인격으로 취급됩니다. 알고리듬이나 봇은 물론이고, 인터넷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도 각각의 아이디를 개별 인격으로 취급하죠. 내가 여럿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완전히 상반된 여러 개의 인격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것에는 분명한 장단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리타분한 생각이지만 한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이름, 외모, 학벌, 자산, 정치관 등의 요소 중 그 어느 것 하나로 단순하게 정의되기 어렵습니다. 정체성에는 한 인간의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녹아들어 있다고 봐야 하며 형성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나답다는 느낌을 갖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 평생이 걸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끝내 그런 자기감을 취득하지 못하고 생을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인생이란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 나가는 긴 여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생 초기에는 누구나 혼란스럽습니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혼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내가 정확히 어디에 속하는지 알기 어렵고, 내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고, 나답게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할 때 그것들이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것들과 정합적이지 않으면 우리는 그때 위화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는 뭘 해도 이게 지금까지의 나와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것을 시도하게 됩니다. 아니 다양한 것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가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맥락에서 벗어난다는 이질감 때문인데, 아직 완전한 맥락이 확립되지 않았을 때는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미 삶의 경로가 완전히 자타의에 의해 공고히 결정된 사람들은 아직 젊은 세대들이 가지는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시도와 일탈을 용인합니다. 젊으니까 뭐든 해볼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것이 아마도 가상의 공간에서나마 여러 개의 인격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것의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터넷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를 옭아매는 규약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죠. 왜냐하면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인터넷상에서는 대부분의 것이 텍스트로만 선언되고 디스플레이됩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연봉 10억을 받는 유능한 트레이더라고 주장하면 그뿐입니다. 누군가 의혹을 제기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때는 그 인격은 폐기하면 됩니다. 내가 굳이 그것을 인증해야 할 법도 없고 의무도 없으니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매우 손쉽게 나의 것이 아닌 아닌 다른 이의 인생을 사는 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힘들기만 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여러 개의 id를 갖는 것은 쉽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문제점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규제도 없이 무수히 많은 인격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이나 신념이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 위화감이나 이질감을 느낍니다. 이를 인지 부조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내가 기존에 믿고 있던 가치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면 우리의 인지 시스템은 그것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일치감을 유지하기 위해 말이든 행동이든, 신념이든 바꿔버립니다. 우리의 신경계는 모순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모순을 지워버리는 쪽으로 작동합니다. 만약 우리가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으로 완전히 통합되기 어려운 계정 여러 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정체성의 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꼴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나의 계정에서는 수용 가능한 일이, 다른 계정에서는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의 성격에 따라서 그럴 수 있고, 또 그 계정을 가지고 자신이 해왔던 맥락 때문에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남들이 원하는 말을 하게 되기도 하고, 남들이 바라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허무가 밀려듭니다. 내가 나를 채워넣기 위해 했던 것이 없다고 느껴지기 쉬우니까요.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나의 정체성이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며, 그러다 보면 나에게 맞는 어떤 것 하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릅니다. 나답게 사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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