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우리 모두는 제3장소가 필요합니다 | The Third Place | 카페의 의미

RayShines 2024. 1. 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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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소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제1장소는 집, 제2장소는 직장입니다. 제3장소는 가족이나 직장 동료 외의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필요한 카페 같은 공간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기억은 장소에 매우 강하게 구애받습니다.

인간의 지향성, 혹은 지남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을 평가할 때 반드시 묻는 것이 사람, 시간, 장소에 대한 지남력입니다. 이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장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가 장소를 기억하는 것에 매우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때 늘 사용되는 도구가 바로 진화심리학입니다. 30만 년 전 인간이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상상해보면 우리의 뇌가 지금 왜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지 짐작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입니다. 우리가 수렵이나 채집을 하던 시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나 시간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장소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어디에 가야 잘 익은 과일이 있는지, 어디에 맹수가 튀어나오는 동굴이 있는지, 강의 어디 즈음에 가야 물고기가 많은지 등에 대한 정보를 기억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장소이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기억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마에는 장소세포 place cell 라는 것이 있습니다. 장소세포는 어떤 물리적 공간이 1대1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며, 물리적으로 두 장소가 가깝다고 해서 장소세포도 인근에 위치하진 않습니다. 장소세포는 구글지도를 그대로 뇌에 옮겨놓은 것이 아니며, 특정 장소에 의해 활성화되는 장소세포는 촉감, 냄새,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반응합니다. 특정한 세포들에 의해 오감과 기억들이 소환된다는 것은 그 장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무엇을 얻었는지 기억하는 것이 생존에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는 기억에 의해서 강하게 좌우됩니다.

장소세포의 존재 때문인지 인간이 공간의 경계를 넘어설 때마다 게임에서 새로운 맵이 로딩되는 것처럼 새로운 마인드셋이 로딩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지방을 넘을 때면 기존 사상 지평선 event horizon 에서 다른 사상 지평선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같은 방에서는 물건을 복잡한 경로를 거치며 옮겨도 기억이 망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방으로 물건을 옮기면 다른 문제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여기서 장소세포가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클 것입니다. A라는 장소에서 B라는 장소로 넘어가면 A를 표상하는 장소세포는 꺼지고, B라는 추상적 개념을 표상하는 장소세포가 켜지며 그와 관련된 감각 기억, 맥락 기억, 일화 기억, 그리고 서술 기억들까지 새롭게 로딩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작업 기억은 기존에 갖고 있던 기억들은 휴지통에 넣고 새롭게 로딩된 정보들을 책상 위에 올려둔 채 작업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제3장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에 설득력이 생깁니다.

제3장소라는 말은 <제3의 장소>라는 책의 저자 레이 올든버그가 처음 고안해낸 용어입니다. 그는 사회적 중심지로서 사람들이 서로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하며,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학습할 수 있도록 장소의 규약이나 분위기를 조성하는 단골, 즉 고인물들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언제든 자유롭게 입장, 퇴장할 수 있도록 까다로운 가입 요건이나 탈퇴 요건 따위는 없어야 한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로서 펍, 선술집, 바, 카페, 미용실, 시장, 쇼핑몰, 교회, 도서관, 공원 등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제3장소는 아마 카페일 것 같습니다.

스타벅스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많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일을 하러 스타벅스에 가는 사람들도 있지요. 집에서 일하는 것이 코로나 이후로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집에서 일을 할 때 눈에 띄는 여러 가지 물건들과 소일거리들 때문에 업무에 집중이 안된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직장은 직장이라는 장소 자체가 주는 고압적인 분위기나 계속해서 집중력을 깨뜨리는 사건들의 발생으로 인해 일하기가 어렵다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데 카페에 가면 내가 앉아 있는 그 공간은 내가 점유하고 있을 수 있고, 일종의 투명 격벽이 생기는 느낌이 들지요. 다들 각자의 공간을 점유하고 서로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매일 먹고 자는 집에서 느껴지는 근심, 그리고 매일 억지로 출근을 해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에서 느껴지는 스트레스가 카페에는 없습니다. 집과 직장에 있음으로 인해 번쩍 불이 들어오는 장소세포가 카페에서는 켜지지 않겠죠. 카페에서도 뭔가 다양한 일들이 벌어질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것이 집이나 직장에서만큼 강렬한 기억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저 지나갈 수 있는 사사로운 일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비교적 느슨한 장소세포들만 켜진 상태에서 뭔가를 할 수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상태겠지요.

 

그래서 누구나 자신만의 제3장소가 필요합니다. 자유롭게 생각이 떠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줄 그런 장소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참고 문헌 : 인터넷 때문에(그레쳔 맥컬러), 오래된 기억들의 방(베로니카 오킨), 뇌 과학의 모든 역사(매튜 코브),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콜린 앨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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