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나에 대해서 아는 것 | 나의 정체성 | 아메리칸 뷰티 비닐봉지 장면

RayShines 2024. 1.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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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뷰티라는 영화를 보면 바람에 이리저리 떠밀려 날아다니는 비닐봉지가 나옵니다. 영화에서는 자유롭게 나는 그 대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E0GPUy4Gn8

 

 

 


바로 위의 장면입니다. 비닐봉지가 그 어떤 제약도 없이 외부의 힘인 바람에 완전히 몸을 맡긴 채 움직이는 장면을 촬영한 비디오를 두 인물이 보고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그 비닐봉지가 춤을 추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영화 상에서는 아직 성숙하지 않아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두 인물에게는 바람을 타고 나르는 비닐봉지의 자유로움과 무한함이 아름답습니다. 누구나 바람을 타고 나는 상상을 한 번 정도는 해봤을 것입니다. 여러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늘을 가르며 나는 장면이 반복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궁극적인 제약이 있으며, 누구나 그것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서서히, 나이를 먹어가며 깨닫게 된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으며, 우리의 DNA가 제시한 경계선을 넘어서기 매우 어렵고,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어둔 상자에서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목에 보자기를 묶고 하늘을 날겠다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되겠다며 드레스를 입고 허공으로 뛰어올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철이 들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내리누르는 어떤 힘이 있음을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가진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은 삶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 중 하나입니다. 

내가 가진 약점을 알게 된다는 것과 포기는 동의어가 아닙니다. 나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정하는 것은 나의 강점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경험과 훈련에 따라 나의 외연은 넓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리저리 떠다니며 부유하듯, 방황하듯, 배회하듯 사는 것과  발목에 단단하게 묶인 족쇄가 사라졌다는 것이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내가 있는 곳에서 성립하는 것이고, 나의 마음과 정신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장소에서 작동합니다. 그리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견고한 베이스캠프가 있어야 먼 곳까지 탐험을 떠날 수 있는 것처럼, 멀리 항해하는 배일수록 무거운 닻을 싣고 다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한계에서 벗어난 여정을 떠나려면 강하고 깊이 뿌리내린 중심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됩니다. 

 

바람을 따라 춤추는 비닐봉지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리를 맴돌며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연은 얼레에 강하게 구속되어 있지만 바람을 타고 오르고 싶은 곳까지 오르고 가고 싶은 곳까지 갈 수 있습니다. 얼레는 속박이기도 하지만, 언제든 감으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여정이고 탐험이라고 본다고 하더라도 그 종착지는 보물이 묻혀 있는 오지의 사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귀환을 꿈꿉니다. 금은보화를 찾았든 못 찾았든 결국 우리는 귀향하고 싶어 합니다. 그곳에는 우리의 삶, 가족, 사랑이 있습니다. 회귀는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나 자신을 강하게 위탁할 수 있는 초점이 필요합니다. 

그 초점은 무엇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종교일 수도, 물질적인 것일 수도, 사회적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설명할 수 있고, 나를 규정할 수 있는 초점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부유하게 됩니다. 바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비닐봉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세상은 이제 너무나 빨리 변합니다. 유행은 언제 왔다 언제 가는지 알 수도 없이 변하고, 오픈채팅방과 SNS에서 부동산, 주식, 건강 정보가 미친듯한 속도로 퍼져 나갑니다. 잠시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만 같아서 매 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늘 쫓기는 것만 같고 정보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이 엄청난 직무유기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사방팔방으로 흐르는 물결 속에서 결국 우리는 중심 없이 날아다니는 비닐봉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에게는 확고한 중심이 필요합니다. 어떤 바람이나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움직이지 않는 공고한 지점이 있어야 합니다. 유행이나 트렌드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에 따라서 계속 변화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나 자신이 그것을 고통으로 느낀다면 나쁜 것이 되겠지요. 누구나 각자의 속도와 템포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나갑니다. 내가 누군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나에 대한 확고한 이미지가 있고, 나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서사가 뚜렷하다면 주변에서 어떤 게 좋고, 어떤 건 나쁘다더라고 해도 덜 흔들리지 않을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이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원치 않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혐오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 내가 지향하는 것, 내가 대척점에 두고 있는 것, 이런 것들의 총체적인 합이 나를 이루고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 될 것입니다.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니 타인의 인생에 기웃거릴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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