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인간의 뇌에 공백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양철학에서 물아일체, 무위, 무념무상을 최고의 경지로 본 것은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벽화가 처음 그려진 이유가 바로 인간이 텅 빈 공간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 막막한 공간을 쳐다보면 왠지 모를 두려움과 불안감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땅 위에 피라미드를 세운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보기도 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뭔가가 생기면 그것은 기준점으로 작용하며 우리가 의탁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됩니다. 설령 무의미한 한 점이라고 하더라도, 무의미한 낙서라고 하더라도, 무의미한 돌멩이 하나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그곳의 중간 즈음에 있는”, “목적지까지 가기 전 3분의 2 정도에 있는” 같은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하나의 의미가 되고, 그럼 그 무위로 가득한 공간에서 느껴지던 두려움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조금 더 가면 그 나무가 있으니까, 방금 전 그 돌멩이를 지나쳤으니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도 가장 두려운 것은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는 것, 침묵이 길어지는 것입니다. 차라리 서로 날 선 대화를 하더라도 그 편이 더 낫습니다.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 다툰 뒤 가장 힘들고 짜증나는 순간은 언쟁 그 자체보다 아무 말 없이 흘러가는 침묵의 기간입니다. 차라리 서로 화를 내면 냈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텅 빈 순간이 우리에게는 훨씬 힘든 시간입니다. 그래서 아주 솜씨 좋은 프로그램 진행자라고 하더라도 초대손님이 단답형으로 답변을 할 때 가장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이겠지요. 이는 뭔가를 시청자들에게 계속해서 채워 넣어줘야 한다는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 때문일 것이며, 더 원론적으로는 인간이 그냥 아무 것도 없이 막막히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을 어색해하고 더 나아가서는 불쾌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혼자 살 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조용함입니다. 집에 들어 갔을 때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으면 외로움이 더 커지지요.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TV를 틀어두는 일이 많습니다. 음악도 좋지만 사람의 목소리가 나면 뭔가 조금 덜 외로운 느낌이 듭니다. 인간은 사람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지만, 사람이 없을 때 느껴지는 외로움은 또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고립은 가장 큰 형벌이었습니다.
감옥에서 가장 큰 형벌 중 하나가 독방이지요. 알카트라즈에는 구멍 the hole 이라는 독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방은 가로 3m, 세로 3m 크기에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칠흑처럼 깜깜했다고 하며 소리도 완전히 차단되었다고 하네요. 그 방에 갇힌 죄수들은 환각을 호소하며 도저히 견뎌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 자극도 없을 때 인간의 뇌는 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자극을 갈구하게 되고, 그것이 없으면 뇌는 자발적으로 자극을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구멍에 갇힌 죄수들이 환각을 경험했던 것이지요.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등장 인물들은 고도를 기다립니다.
고도가 누구인지, 언제 오는지, 어디서 오는지 모릅니다. 그냥 마냥 기다립니다. 시간이 흐르긴 하지만 현재만 존재할 뿐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완전한 불확실성 속에서 고도를 기다립니다.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릴 때 우리는 방향 감각이 상실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 벡터값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시간은 연속적인 것이 아니며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요. 단순히 단절된 찰나를 우리의 뇌가 어떤 시리즈라고 생각하며 연결해서 인식하며 방향성이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미래나 과거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이 “고도”를 기다린다면 우리는 완전한 방향 감각의 상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공백, 빈 공간, 텅 빈 상태를 견뎌내지 못합니다.
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엄청난 속도로 일어나는 전기 화학적 신호의 총합입니다. 전기와 화학의 세계에 완전한 정지란 없습니다. A와 B라는 물질이 비율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A가 B로 변화하는 속도와 B가 A로 변화하는 속도가 완전히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이를 동적 평형이라고 부릅니다. 멈춰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멈춰 있지 않습니다. 뇌는 계속 작동하고 있고, 뭐라도 하려고 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중에 그 어떤 결과라도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런 생각을 하지 말자고 아무리 결심을 해도 어떤 생각인가가 반드시 의식화됩니다. 이것을 알고 있던 선지자들은 그래서 잡념을 없애자고 주장하며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뇌가 먹어치울만한 자극을 무한대로 쏟아붓습니다.
통신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며 인간의 뇌에 정보를 공급하는 속도 역시 미친듯이 빨라졌습니다. 끊임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 갈수록 짧아지며 15초마다 한 번씩 새로운 영상을 보여주는 틱톡, 릴스, 쇼츠를 우리는 뇌는 게걸스럽게 먹어 치웁니다. 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허기는 달래지지 않습니다. 계속 해서 새로운 자극을 원합니다. 뇌는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디지털 디톡스를 하는 사람들도 나오는 것이겠지요. 과거 동양철학자들이 이야기했던 무위로 돌아가자는 아이디어를 그때 당시보다 더 강하게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느끼실 겁니다. 속도가 우리를 얼마나 몰아붙이는지, 그리고 그 엄청난 속도와 압력에 떠밀려 삶을 잃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말입니다. 마음챙김, 명상, 요가 등 주변 자극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자신을 차단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 범람하는 정보와 자극들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차폐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으나, 결국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단 15분이라도 그런 시간을 가지려는 연습을 하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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