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선택의 자유, 기회의 평등은 불안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 현대 사회의 불안 |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

RayShines 2024. 1. 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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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은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우리들에게 불안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과거 우리에게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합니다.

과거 신분, 계급, 서열이 고정되어 있던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은 속박을 벗어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목표를 정하고 나아가는 자유를 바랐을 것입니다. 일부 매우 운이 좋은 계층에게만 부여됐던 선택의 자유라는 것은 단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제한할 자유까지 주었습니다. 성직자나 지배계급에 속하지 못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자신의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고 순응한 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종교가 현세의 고통을 인내하는 자에게는 사후의 궁극적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학혁명, 그리고 뒤이어 일어난 시민혁명은 인간이 현세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자격과 자유가 있다고 천명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발생한 국가인 미국은 만인의 평등과 모두가 행복할 권리, 무엇이든 선택할 자유라는 근본적 가치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미국이 이루어낸 여러 성취들은 그것을 꿈, 아메리칸 드림, 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환상적인 것이 됐고 지금도 많은 기업들과 스타트업들이 그 꿈을 먹고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35,000개의 결정을 내립니다.

삶을 축약하는 여러 가지 명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라는 말이 가장 합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의 뇌는 매일 35,000번의 결정을 내립니다. 이것은 시간당 2,000번 꼴이고, 2초에 한 번씩 뭔가를 정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대부분은 사소한 것입니다. 오늘은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라떼를 마실지, 친구에게 온 메시지를 지금 확인할지 중요한 업무 처리 뒤로 미룰지, 점심 메뉴로 뭘 먹을지,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몇 번째 플랫폼에서 기다릴지 등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결정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히 직업을 결정하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인생의 경로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결정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뇌는 무조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도 결정이고, 결정 내리지 않은 채 그냥 기다리겠다는 것도 결정이니 결정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무위라는 것은 없습니다.

 

 

 

무한은 우리를 압도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우리 앞에 무한한 선택지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카페에 갔는데 커피의 종류가 만 개쯤 있다고 해보죠. 어떨까요. 그런데 한 구석에 “오늘의 추천 커피”라는 메뉴가 있다고 하면 그것을 고를 가능성이 꽤 높지 않을까요. 화장품 가게에 갔는데 립스틱 색깔이 만 가지, 아이섀도 색깔이 만 가지 있다고 해보죠. 그럼 조합이 1억 가지가 됩니다. 그 압도적인 숫자 앞에서 어떤 조합을 고를지 엄두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상황은 극단적인 예이기는 합니다만, 실제 현실에서는 선택의 가짓수가 10개만 되어도 압도되는 느낌이 날 수 있습니다. 대학을 진학하고 전공을 결정할 때 우리가 느끼는 막막함, 그리고 직장을 정할 때 그 엄청난 종류와 숫자로 인해 느끼는 무기력감이 있는 것이지요.

 

선택의 자유가 없다면 개인은 잠재력을 끌어내기 어려울 것임에 분명합니다. 내가 가진 재능이나 장점과 무관하게 나에게 주어진 역할만을 수행해야 한다면 나의 잠재력은 경직된 구조 속에서 그대로 시들어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전세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고 그 속에서 인류는 계속해서 진보해 나갈 것임에 분명합니다.

 

 

 

우리는 건강한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고 배웁니다.

우리가 무엇이든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은 그 결정으로 인해 발생할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계약을 시스템 전체와 체결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내가 요리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자동차 정비공이 되기로 결정을 했다면 그에 따르는 경제적, 사회적 이해득실은 모두 내가 짊어져야만 합니다. 모든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과 기회의 평등이 주어져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동일한 결과의 산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학적 지식을 취득하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 정비공으로 일할 때 발생시키는 가치와 기계에 대해 직관적인 이해력이 높은 정비공이 발생시키는 가치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결과의 차이는 생각보다 매우 냉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저것을 포기한다는 것과 동의어입니다. 나 자신조차도 내가 어떤 재능이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면 기회비용은 더욱더 커집니다. 게다가 무엇이든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다양한 것을 경험해 보고 나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쉽고, 매우 긴 탐색 과정을 가져가며 결정적인 선택은 유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결정을 내리면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책임이 생각보다 매우 뼈아플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 리 각자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을 느낍니다.

 

 

 

현대사회에서도 타의에 의해서 인생이 결정 돼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건강 상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사고가 발생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의 가짓수가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유의 제한이 발생하고 선택지의 스펙트럼이 좁아질 것이기 때문에 100%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일반적 예상과 달리 희망적이고 건설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인생이 예전이 비해 간단해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고려했어야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명확해지면 선택지가 확 줄어듭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 역시 더 명확해지고 거기에 집중해야만 하는 당위도 함께 늘어납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포기하고,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면 편안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방식이 무자비한 외부 상황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들은 그 상황을 긍정한 뒤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결국 우리는 자유와 평등, 무한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유는 좋은 것입니다. 평등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하고, 그 앞에서 누구나 주도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무한의 앞에서 느껴지는 불안을 그 누구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유와 평등, 기회와 선택을 박탈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을 받아들이고,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태도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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