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첫사랑을 만났을 때 실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판단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

RayShines 2024. 2.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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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됐을 때 크게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나의 추억 속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발생하는 일일 것입니다.

 

 

 

캡그래스 증후군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캡그래스 증후군 환자들은 자신과 매우 가까운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사람들이 아니며, 변장을 한 사기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 곁에 있는 부모가 실제 부모가 아니라 변장을 한 협잡꾼들이며 진짜 부모들은 지금 멀리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증상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설명 중 하나는 대상의 얼굴이라는 시각 정보가 뇌로 전달됐을 때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감정적 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의 얼굴을 보면 당연히 거기에 맞는 감정적 반응이 일어납니다.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오래전 있었던 일 때문에 서운함과 짜증스러움이 밀려들기도 합니다. 감정의 성분이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조밀하고 복잡한 감정이 와르르 밀려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느껴질 때 우리는 “난 우리 아버지만 만나면 늘 이런 기분이 들어”라는 말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아버지나 어머니를 만났을 때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이에 대한 비교적 논리적인 설명 중 하나는 “나에게 아무런 감정적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아님에 분명하다”, “난 우리 어머니를 만날 때면 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따뜻하고 포근한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 내 마음은 완전히 돌 같아, 이 사람은 우리 엄마가 아닐 거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감정은 우리가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그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대상의 외양이나 형태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해 느껴지는 감정에 따라서 대상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그 정도로 깊이 의존합니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라면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방추형 이랑 fusiform gyrus 이라는 부위는 아마도 얼굴에 관한 정보를 주로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방추형 이랑에서 편도체로 연결된 시각 정보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냐에 따라 대상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요.

 

 

 

첫사랑은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희귀한 경험입니다.

이제 첫사랑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평생 한 번뿐인 경험이니 당연합니다. 특히 첫사랑은 뇌가 한창 발달해가는 동시에 여러 호르몬이 범람하는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은 기억에 특별한 색을 덧칠합니다. 반짝이는 감정으로 화려하게 덧칠된 기억은 창고의 가장 높은 자리에 단단하게 자리 잡습니다. 인간의 뇌는 첫 번째, 그리고 희귀한 사건에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첫사랑은 그 모든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로 인한 감정적 동요도 매우 크게 발생했으니 더 큰 가중치가 붙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시간이 지나면 긍정적 요소만 기억하는 경향이 큽니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에 비해 긍정적인 기억만 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따라서 첫사랑은 이 모든 묘약들이 조합되어 우리 기억에 가장 찬란한 기억으로 남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광채는 더 강해집니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첫사랑을 만났을 때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다시 말해 왜 첫사랑이 예전에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지도 말입니다. 그 사람의 외형이 변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혹은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감정은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첫사랑을 만나기 전에는 다시 그 사람을 만나면 예전과 같은 감정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나도 변했고, 그 사람도 변했습니다. 예전처럼 뭔가를 처음 대할 때의 설렘은 잊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보다 더 강렬한 무엇인가도 느껴봤을 수 있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제 첫사랑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감정을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습니다. 그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고 해도 말입니다. 첫사랑은 내 추억 속에 있는 가상의 대상일 뿐 현실의 첫사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첫사랑은 기억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좋다는 말들을 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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