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프로소케 Prosoche | 스토아 철학 | 마음챙김 Mindfulness | ADHD | 명상 Meditation

RayShines 2024. 2. 8. 00:00
반응형

마음 챙김 mindfulness 이 유행처럼 된 지도 벌써 십 년은 된 것 같습니다. 스토아 철학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습니다. 프로소케 prosoche 라고 불리는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은 참 쉽습니다만 실제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무엇인가에 완전히 집중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자원과 지적 기량뿐만 아니라 신체적 역량도 필요합니다. 아시겠지만 머리를 쓰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꽤 큰 과제이니까 말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주의 집중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스토아 학파의 주요한 현자이자 로마의 황제이기도 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정확한 분석, 자연스러운 위엄, 인간적 연민, 감정 등에 좌우되지 않는 공정성 등의 도움으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열렬하게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 깊은 의미에서, 그러니까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프로소케의 진정한 뜻은 자아에 주의를 기울이며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견지에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이야기한 몰입 flow 이라는 개념이 있죠. 스토아의 프로소케와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은 시대를 달리 한 동일한 개념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제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병으로 규정하는 시대가 되기도 했지요.

주의와 집중이라는 개념이 더 중요해진 것은 아마도 ADHD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ADHD를 가진 아이들이야 과거에도 있었을 것이고, 그것에 대한 문헌적, 역사적 근거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755년 멜키오르 아담 바이카르트의 저서를 보면 “주의력결함과 그에 대한 치료”라는 구절이 나오고, 1798년 알렉산더 크라이턴 역시 “정신적으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뒤 “다행인 것은 나이를 먹으면 사라진다는 것(what is very fortunate, it is generally diminished with age)”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45년 하인리히 호프만이 쓴 “더벅머리 페터“에 등장하는 인물인 가만히 있지 못하는 필립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의사였던 호프만이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기 위해 자신이 만났던 환자들에 대해 그림과 글로 설명한 책이었습니다. 아마도 필립은 ADHD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일부 부모들은 아이들의 학습 능력과 학업 성취, 그리고 학벌에 삶의 모든 것을 거는 경향이 있지요. ADHD를 가진 아이들이 전체의 3~4% 임을 고려하면 절대적으로 많다고 볼 수도 없겠으나, 그것이 나의 아이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ADHD라는 병뿐만 아니라 주의집중력을 향상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약이든, 훈련이든, 놀이이든, 무엇이든 해보려고 하는 이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요즈음에는 우리의 집중력을 깨뜨리는 것들이 너무나 많죠.

디지털 디바이스에서 끊임없이 우리는 푸쉬 알림은 우리가 선형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받은 알림의 개수는 하루 평균 218개라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과소평가된 숫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요새는 공부든 과제든 놀이든 랩탑, 태블릿, 스마트폰을 가지고 하게 되니 방해를 훨씬 더 쉽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에서 필기를 할 때도 랩탑의 키보드를 두들기게 되지요. 알림을 다 꺼두고 필기에만 집중한다고 해도 타자를 치는 것과 필기구를 이용해서 쓰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은 필기를 하는 것보다 타자를 치는 것이 훨씬 속도가 빠릅니다. 따라서 타자를 치는 경우 화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게 됩니다. 그런데 펜으로 쓰는 경우에는 화자의 말을 그대로 다 베낄 수가 없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만 정리해서 요점 위주로 적게 되죠. 이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유입되는 정보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며 처리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며 학습 능력도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주 간단한 프로소케의 예입니다.

 

 

 

억지로라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글의 초입에 마음 챙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프로소케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인 자아에 집중하는 것을 위해서 요새는 명상, 마음 챙김을 많이들 합니다.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에서 잠깐 거리를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이를 먹을수록 절감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소음과 신호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변별한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 능력은 소음이 없는 시간에 키울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할 수 있다면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습니다. 명상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가볍게 산책을 하면서, 아니면 의자에 앉아서라도 불필요한 자극으로부터 나 자신을 차단하고 보호하는 그런 시간을 가짐으로써 프로소케를 실행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참고 문헌 : 인생이 막막할 땐 스토아 철학(요나스 잘츠게버),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기술(데런 브라운),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반건호)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