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략 하루에 6만 개에서 8만 개의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무요한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어떤 날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머리는 복잡하고 해야 할 일은 많고 그 와중에 걱정은 밀려드는 그런 날이지요. 어릴 때 본 만화에서 한 캐릭터가 치명적인 공격을 당할 위기에 놓이자 눈을 질끈 감으며 “무념무상”을 속으로 외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동양철학에서는 무위, 무념, 무상, 공 같은 개념을 매우 쉽게 이야기하고, 그래서인지 우리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해보면 누구나 알 수가 있죠.
생각을 하지 말자는 것도 하나의 생각입니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으나 생각은 어떤 영적인 것이 아니라 전기화학적 신호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기나 화학반응은 멈춰있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항상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오고 가는 반응의 속도가 같다면 겉으로 보기에 변화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을 수 있지만, 반응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동적 평형이라고들 하지요. 평형은 이루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계속해서 물질의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멈춰 있지 않는 것, 그것이 생각을 이루는 본질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화학적 신호나 전기적 신호는 완전히 중단되지 않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할 것이며, 뇌세포에서 발생하는 물질들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다시 청소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총합이 - 사실 아무도 그 정확한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 우리에게 감정, 감각, 의식, 생각 등의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 결과물인, 혹은 부산물인, 생각 역시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우리는 생각을 완전히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멈출 수 없습니다. 하루 종일 뭔가를 생각하고 뭔가가 생각납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고, 기억해내고 싶은 중요한 것들은 가물가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뇌를 스쳐가는 생각의 개수가 대략 하루에 6만 개에서 8만 개라고 합니다. 대략 1초에 한 개 꼴입니다. 1초에 생각을 하나씩 한다고 하면 하루에 86,400개의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하루에 8만 개의 생각을 한다면 자리에 누웠을 때 피로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순 없습니다.
생각은 참 좋은 것이기도 하고, 참 나쁜 것이 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지옥이 되기도 하고 천국이 되기도 합니다. 내 생각에 따라 옆에 있는 사람이 스승이 되기도 하고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생각은 참 많은 것을 바꿀 수 있고, 각 개인의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생각을 바꾸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의 가장 이상한 부분이지요. 우리는 무엇이든 생각할 자유가 있지만,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 인지적인 편향과 왜곡에 빠져 있습니다. 어찌 보면 각 개인의 성격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인지적 편향과 왜곡의 순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어떤 순서로 전개하느냐가 결국 그 사건에 대한 그 사람의 반응을 결정하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쌓여나가며 고착화되는 것이 성격이라고 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하루종일 울려대는 스마트폰 알람, 오픈채팅방에서 쏟아져 넘치는 다양한 의견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뉴스피드는 아마 우리의 생각의 숫자를 10만 개도 넘게 만들어버릴지 모릅니다. 정보의 홍수와 그 때문에 생기는 생각의 홍수에 잠긴 채 얼굴만 살짝 내놓고 가쁜 숨을 쉬고 있는 제 자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뭔가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삶을 살아나갈수록 고민거리와 걱정거리가 많아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삶에서 발생하는 부스러기들은 어느 정도 치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요새는 이런 것까지 내가 알고 또 염려를 해야 하는 걸까 싶은 것들까지 억지로 알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뒤쳐지는 게 아닐까, 이걸 모르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너무 바보 같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일까요. 아니면 난 이런 것도 다 세세하게 알고 있다고 뽐내고 싶은 허영심 때문일까요.
그래서 무용한 시간이 더욱더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더 복잡해지고 빨라지고, 더 타이트하게 연결되어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죠. 그리고 그게 세상이 발전해 나가는 원리일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하거나 그 흐름에 역행하는 것도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가끔은 생각의 속도를 좀 늦추고, 모든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고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갈수록 더 많이 듭니다. 그게 조금 여유로운 산책이든, 명상이든, 음악이든, 독서든, 영화든. 각자 나름의 무용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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