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무한한 선택지는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요 | 선택의 역설 | 배리 슈워츠 Barry Schwartz

RayShines 2024. 2.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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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역설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선택지가 있는 것은 좋지만, 선택지가 너무 많은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불안감을 가져온다는 개념이지요.

 

 

 

우리는 선택의 여지를 반깁니다.

음식점에 갔을 때 다양한 메뉴가 있으면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는 합니다. 극장에 갔을 때도 그렇고, OTT에서 드라마를 고를 때도, 스트리밍에서 음악을 고를 때도 그렇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은 우리 스스로가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게 하고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느껴지죠.

 

 

 

무한한 선택지는 우리는 무조건 행복하게 할까요?

한편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매일 24,000곡의 노래가 발표됩니다. 헐리우드에서 쏟아지는 영화는 연간 1000편에 가깝습니다. 요새는 OTT에서도 영화가 쏟아지니 아마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입니다. 화장품을 파는 곳에 가보면 선택이 너무 많고, 그 조합까지 따진다면 거의 무한대의 선택지가 나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게 선택지가 많은 것이, 즉 현대 사회에서 우리 앞에 놓인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선택지가 우리를 과연 자유롭고 행복하게 할까요.

 

 

 

기술은 선택지의 숫자를 더 증폭시킵니다.

그리고 여기에 기술에 더해지면 선택의 여지는 더욱더 증가합니다. 초고속 인터넷은 우리에게 클릭이나 터치 한 번으로 대부분의 것들을 취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하루 이틀만 기다리면 배송이 안 되는 것들이 거의 없죠. 사고 싶은 물건을 하나 검색하면 수만 개의 링크가 쏟아집니다. 하나씩 살펴보는 것은 말이 안 되니 가격순으로 검색을 하면 10원 단위로 가격이 쪼개집니다. 배송료가 쇼핑몰마다 조금씩 다르니 머릿속으로 실제 가격을 계산해야 하는데 선택이 너무 많다 보니 “에라 모르겠다”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무한한 선택은 우리를 FOMO에 빠뜨립니다.

게다가 통신기술과 제조기술의 조합, 그리고 SNS 등을 통한 마케팅은 우리에게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더 값싸고 좋은 물건들이 이미 나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그걸 모르면 호구가 되는 것 같고,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무한대의 선택지는 우리의 FOMO를 자극합니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불안감도 함께 증폭시키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선택이 전혀 없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커지게 만듭니다. 막상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일 법도 한데, 선택지가 없으면 그것은 자유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선택지가 적거나 없는 것보다는 많은 것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를 희망 오류 miswanting 이라고 합니다. 희망 오류는 무엇이 우리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고,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지에 대한 그릇된 예상을 할 때 발생합니다. 다시 말해 선택이 무조건 많다고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데 선택이 없는 것에 비해서는 무조건 선택이 많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를 선택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가 불안을 가져오는 현상에 대해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 Barry Schwartz 는 “선택의 역설 paradox of choice”라고 지칭했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할지 몰라도, 선택은 우리를 무작정 자유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살다 보면 너무나 압도적인 숫자의 선택지 앞에 놓일 때가 있고 그럴 때 가끔은 “그냥 누가 이걸 대신 정해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진학할 학교를 고를 때, 직업을 고를 때, 연애 상대자를 고를 때,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와 같이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저도 그런 생각이 드니, 사소한 결정을 할 때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아마도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결정한다는 사실에 대한 진취적 태도를 취할 수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실패를 달가워하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번의 실패가 되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가끔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발생시킬 수도 있으며,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회일수록 더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다면 결정을 유보하는 일이 자꾸 늘어나겠죠. 취업, 결혼, 출산, 그 모든 것이 뒤로 밀리며 늦어지는 현상에 선택의 역설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주요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선택은 좋은 것임에 분명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수백 년 전에나 가능했던 명제입니다. 지금은 그런 명령을 받아들일 사람은 없죠. 누구나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누구나 각자의 속도로 사는 것입니다. 얼마나 빨리 가는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늦었는지 하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나의 인생을 살면서 나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주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결국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인생에 만족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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