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손실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고통은 불가피한 것인 동시에 의미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나쁜 것을 모두 다 피할 수 없습니다.
아주 먼 옛날 한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 왕국의 왕과 왕비 사이에 공주가 태어났습니다. 왕과 왕비는 세상의 나쁜 것들로부터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공주의 세례식에 말레피센트(maleficent, 해로운)를 초대하지 않기로 합니다. 공주가 세상의 고통과 슬픔, 온갖 안 좋은 것들을 모르길 바랐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한 말레피센트는 공주에게 저주를 겁니다. 열여섯 번째 생일에 물레 바늘에 찔려 죽게 될 것이라는 저주를 말입니다. 이번에도 왕과 왕비는 말레피센트를 초대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세상의 모든 물레를 모아 불태워 없애고, 착한 요정들에게 공주를 맡깁니다. 이 3명의 요정들 역시 세상의 부정적인 것들을 없애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결국 열여섯 살 생일에 다른 세상에서 온 물레에 찔려 공주는 깊은 잠에 빠집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내용입니다.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것들도 분명히 있지요. 두 가지 모두 어떤 인과관계에 의해서 발생하게 될 수도 있고, 무작위적 사건에 의해 우연히 발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란다고 해도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나쁜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 역시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들도 함께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같은 것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좋고, 어떤 사람에게는 나쁩니다. 절대적으로 좋고, 절대적으로 나쁜 것도 분명히 있으나, 상대적으로 좋고, 상대적으로 나쁜 것도 많죠. 그래서 뭐가 좋고 나쁜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고, 나쁜 것으로부터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과제일 경우가 많습니다.
오로라 공주의 부모처럼 사랑하는 자신들의 자녀가 세상의 나쁜 것들을 쳐다보지도 않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야 어쩔 수 없습니다.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죠. 자기가 사랑하는 이들은 항상 따뜻한 햇살이 내려 쪼이는 꽃길만 걷길 바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길에는 돌부리가 튀어나와 있고, 뙤약볕이 쏟아지기도 하며, 폭우에 길이 잠기기도 합니다. 들짐승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기도 하고, 도적떼들의 함정에 빠질 수도, 사기꾼에게 속아 봇짐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부드러운 바람 속에 날카로운 쇠붙이의 냄새가 섞여 있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세상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나쁜 것에서 눈을 돌릴 수는 있어도, 세상의 나쁜 것을 모두 없앨 수는 없으며, 나쁜 것을 모두 피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레를 태워 없앨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고통은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우리에게 안 좋은 일이 발생했을 때 느껴지는 고통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걱정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식욕이 없어 얼굴이 핼쑥해지기도 하고, 감정적인 고통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고통은 정말 피하고 싶은 것이지요. 하지만 고통을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이겨내고 하면 깨닫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아끼지 않는 것,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 의해서는 고통받지 않습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 소중히 여기는 관계,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훼손되고 상했을 때 고통받습니다. 다시 말해 고통은 내가 이 세상에서, 내 마음속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관심한 것들로부터 상처받지 않으니까요.
세상을 살다 보면 바지에 흙탕물이 튀기도 하고, 더러운 것이 손에 묻기도 하고, 듣기 싫은 말을 듣게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 모든 나쁜 것을 깡그리 모아서 지하 창고 안에 넣고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다면 좋겠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지요. 아니면 그 모든 것들로부터 피하려고 내가 지하 창고 안에 숨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행복한 삶일 수는 없습니다. 회피는 내 삶의 반경을 축소합니다. 누릴 수 있었던 행복을 놓치게 만들 수 있고, 그로 인해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와 함께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정녕 바라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에서 고통을 느낀다면 나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면 나는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물질적 피해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면 나는 물질이 중요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나에게는 그것을 잃었을 때 고통이라는 것이 발생합니다. 그 가치를 좇는 과정 중에 우리는 힘이 들 수도 있고,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국에 우리가 그 가치를 지켜내고 얻을 수 있다면 그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대부분의 고통은 지나가더군요.
살면서 발생하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대부분 지나가더군요. 지나갈 것은 지나치게 두고, 나에게 중요한 것을 향해 천천히 나의 속도로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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